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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무비] 자식의 이름으로 악마가 된 사람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이은선의 픽(pick)무비] 자식의 이름으로 악마가 된 사람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기자명 이은선
  • 입력 202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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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 정의와 상식을 말하는 건 쉽다. 사람은 타인의 권리와 안전을 해쳐선 안 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일이든 그게 ‘내 일’이 되면 판단은 쉽지 않을지 모른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범죄 사건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만약 당신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이라면 여전히 세상의 상식을 옹호할 것인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며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가해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직설적인 제목만큼이나 돌려 말하는 법 없이 핵심으로 돌진한다. 중심에는 학교폭력 사건이 있다.

명문 사립인 한음 국제중학교 학생 건우(유재상)가 호숫가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된다. 영문도 모른 채 학교 상담실에 모인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가해자라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건우가 담임 선생님 송정욱(천우희)에게 학교폭력 피해를 털어놓으며 네 명의 이름을 적은 편지를 전달한 것이다. 

가해 학생들의 보호자들이 지닌 이력은 화려하다. 병원 이사장, 전직 경찰청장을 지낸 조부모, 같은 학교 교사, 접견 변호사까지. 이들은 각자의 권력과 상황을 이용해 사실을 묻으려 한다. 학교도 불미스러운 사건 취급하며 외부에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동조하는 분위기다. 중요한 증거인 편지를 없애는 일에도 앞장선다.

하지만 건우가 끝내 숨지면서 정욱은 양심선언을 통해 세상에 진실을 알린다. 사건을 은폐하려던 부모들의 움직임은 한층 더 다급하고도 악랄해진다. 

영화의 원작은 일본의 동명 원작이다. 극작가이자 고등학교 교사인 하타사와 세이코는 실화를 바탕으로 연극의 각본을 썼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는데, 가해자로 의심되는 아이들이 장례식장에서 관 속을 들여다보며 웃었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발단이었다.

연극 각본은 하루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리며, 학부모 상담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배경을 가진다. 영화는 시공간을 보다 확장했다. 사건이 알려진 날로부터 일련의 상황들을 추적하고, 플래시백을 통해 아이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재연하기도 한다. 제3의 목격자도 등장한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일련의 작품들과 달리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피해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에 있거나, 미미하게 내더라도 곧 묵살당한다. 

그 사이 영화가 집요하게 주목하는 것은 괴물 같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악마가 된 부모들의 민낯이다. 증거를 은폐하는 것도, 정의로운 일을 하듯 똘똘 뭉치는 것도, 불리한 상황이 되면 그 안에서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가해자의 입장으로 시각을 바꿔 바라본 학교폭력의 이면은 한층 더 추악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손쉬운 공분이 가능하다. 가해 학생들의 부모를 거침없이 욕하고 그들의 행동을 손가락질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노를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바라보다 보면 이 영화가 던지고 있는 진짜 질문에 가닿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상황이라면 매 순간 정의롭고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가. 인간은, 과연 그럴 수 있는 존재인가. 

건우가 고발한 학생 중 한 명인 한결(성유빈)의 아버지 강호창(설경구)이 겪는 딜레마는 중요하다. 사건 초반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머지 학부모들을 이끈다.

건우가 죽기 전까지 그가 남긴 편지를 ‘유서’라고 표현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도 그다. 모두가 한배를 탄 운명이니 똑같이 노를 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기적인 행동은 그보다 더 이기적인 행동에 지게 돼있다. 

어느덧 학부모들은 호창의 아들인 한결을 주동자로 몰아가면서 자녀의 죄를 줄이려 한다. 한결은 호창에게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것이 당신의 일이라면, 아이의 죄를 인정하고 피해 가정에 속죄하며 나아가 책임과 윤리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울고 있는 내 아이의 말보다, 말없이 누워있는 피해 학생의 고발 내용과 담임 선생님의 양심선언을 더 크게 믿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영화는 가해자 부모들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전체의 민낯을 겨냥한다. 입시에 목숨을 걸고, 친구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명문 국제중학교라는 배경을 만들어낸 어른들. 사람 대 사람이 아닌 사회적 계층과 권력의 관계를 먼저 알아버린 아이들. 잔인한 폭력이 일어난 학교 곳곳은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천박한 사회의 축소판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마주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일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을 마주한 뒤 어떤 선택을 내리는 강호창의 얼굴을 담은 마지막 장면이 단호하리만치 서늘하게 기억되는 이유다. 

물샐틈없는 공격과 수비가 탄탄하게 이어지는 배우들의 연기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를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장점 중 하나다.

설경구, 김홍파 등 가해 학생의 학부모들의 염치를 잊은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는 사이 사회 어딘가에는 분명 살아있는 정의를 상징하는 담임 선생님 역의 천우희의 존재가 미덥다. 자식의 죽음 앞에 무너지는 건우 어머니 역의 문소리 역시 등장 분량이 많진 않지만 극 전체에 남다른 울림을 남긴다. 

지금은 한국영화 제작 사업 자체가 철수됐지만 20세기폭스가 제작 투자한 작품이다. 영화는 주연배우 중 한 명인 오달수의 성추행 사건과 코로나19 이슈가 겹치면서 개봉이 무한정 미뤄지다가 5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한편으로는 5년이 흐르는 동안 학교폭력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이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뼈아픈 증거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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