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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무비] 감춰질 수 없는 진실, ‘뿌리’에 대하여 '패러렐 마더스'

[이은선의 픽(pick)무비] 감춰질 수 없는 진실, ‘뿌리’에 대하여 '패러렐 마더스'

  • 기자명 이은선
  • 입력 2022.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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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 내 딸이 나의 친 자식이 아닌 것 같다. 애써 부정해 보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는 100% 불일치.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딸을 낳았던 다른 산모의 아이와 바뀐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은 이내 부정 불가능한 사실로 확인된다.

친모에게 어떻게 진실을 알려야 한단 말인가. 지금껏 딸을 키워온 나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작 <패러렐 마더스>는 이토록 도발적인 설정 위에 인물들을 배치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싱글맘이 되기를 선택한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아나(밀레나 스밋)는 딸이 뒤바뀐 기구한 사연 속 주인공이다.

아나가 키우던 딸, 즉 야니스의 친자식은 그 사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상황. 야니스는 아나 몰래 진행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그녀가 딸의 친모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진실을 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야니스가 아나 몰래 모든 상황을 홀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는 강력한 서스펜스가 발동하고 있다. 야니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나는 언제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인가, 영화는 과연 어떤 결말에 가닿을 것인가.

물론 <패러렐 마더스>는 이 같은 설정 하나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알모도바르 감독은 여기에 생각지 못한 줄기 하나를 더 엮어낸다.

사진작가인 야니스는 법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할데)를 통해 프랑코 정권 시기 학살로 희생된 증조부의 유해를 찾아 수습하고자 한다. 아르투로는 야니스가 낳은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지만, 극 안에서 야니스를 돕는 역할로서 더 중요한 인물이다.

진실을 공유할 수 없는 채로 위태로운 우정을 이어가는 야니스와 아나의 사연이 펼쳐지는 사이, 유해 발굴 작업을 둘러싼 이야기 역시 나란히 진행된다. 이는 실제로 스페인이 진행하고 있는 국가적 차원의 역사 재건이기도 하다.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에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고 잊혀진 역사를 제대로 발굴하기 위한 ‘역사 기억법’을 통해서다.

스페인이 내전과 프랑코 정권을 거치며 가지고 있던 사회문화적, 역사적 트라우마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서 늘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간 그의 영화들에서 엿보이는 인물들의 파괴적이고 억압된 성적 욕망은, 프랑코 정권 동안 스페인에서 견고하게 옹호됐던 가톨릭 사상에 균열을 내려는 창작자의 의지이기도 했다.

알모도바르 영화 속 인물들은 대부분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희생돼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가 여성과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 커뮤니티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이유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의 영화 세계의 원류인 모성과 어머니는 무너진 역사로부터의 재건, 강인한 삶의 의지를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다.

다만 <패러렐 마더스>에서는 감독이 그간의 작업에서와는 달리 아주 직접적으로 역사의식을 언급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엿보인다. 야니스와 아나가 서로 다른 세대로 설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갓 20대가 된 아나는 내전과 독재 정권의 영향으로부터 이미 멀어진 세대다. 그는 유해 발굴 작업에 힘을 쏟는 야니스에게 “무덤을 파헤치는 대신 미래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아나에게 야니스는 “이 나라가 덮은 과거에 대해 관심 가질 나이가 되지 않았냐”는 입장을 보인다.

결국 알모도바르가 제시한 뒤바뀐 아이와 유해 발굴이라는 두 가지 설정은 ‘지워질 수 없는 진실’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한다.

거짓을 바로잡고 나의 아이에게 원래의 자리를 찾아주려는 노력, 내가 지금껏 나의 존재로 살아올 수 있게 이어져왔던 유산과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려는 노력. 이는 둘 다 ‘뿌리’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감독이 언뜻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두 가지 맥락을 한 영화에 동시에 담고자 했던 이유다.

알모도바르는 이번 작품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자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역사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여성과 어머니에게 경외감을 표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격을 상실하거나 안타까운 이유로 부재하게 된 아버지들과 달리, 어머니들은 고통 속에서도 꿋꿋하게 남아서 무너진 역사를 재건하는 영웅적 존재다.

하지만 섣부르게 모성 신화를 찬미하는 우를 범하는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야니스와 아나, 아나의 어머니 테레사(아이타나 산체스 지욘) 등을 통해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어머니를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에 가깝다.

<라이브 플래쉬>(1997)를 시작으로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귀향>(2006) 등에서 호흡을 맞춰온 알모도바르 감독과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의 협업이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크루즈는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페인 앤 글로리>(2019)에서 자신의 어머니 역할을 맡길 정도로 신뢰하는 배우다.

그는 이 영화로 지난 제94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으며,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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