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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내포지역 포구이야기] 서산시 부석면 창리포구①

[기획-내포지역 포구이야기] 서산시 부석면 창리포구①

  • 기자명 박두웅 기자
  • 입력 2022.09.22 09:25
  • 수정 2022.09.2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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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창리 전경. (박두웅 기자)
하늘에서 본 창리 전경. (박두웅 기자)

[뉴스더원 충남=박두웅 기자] 홍성IC를 나와 서산을 거쳐 태안으로 가는 국도 77호선. 이 길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선조들의 땀과 피눈물이 쌓이고 쌓인 애환의 길이기도, 정주영 현대 회장의 천수만 방조제 공사로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난 길이기도 하다. 먼저 4차례에 걸쳐 창리포구 이야기를 풀어본다. <편집자 주> 

 창리, 예부터 ‘왜현리(倭懸里)’라 불렸다
 왜구를 잡아, 매달았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

창리어민회관. (박두웅 기자)
창리어민회관. (박두웅 기자)

천수만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창리포구. 포구에는 갯마을의 짭짜름한 갯내가 지금도 배어 있다.

충남 서산시 부석면 창리는 예전에 창말, 창촌(倉村), 또는 왜현리(倭懸里)라 불렸다. 조선 수군이 천수만을 따라 노략질하던 왜구들을 잡아, 매달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왜구들의 노략질이 얼마나 징글징글했으면 마을 이름조차 그렇게 붙였을까.

창리 어민들의 삶. 부부가 함께 고깃배를 탄다. (박두웅 기자)
창리 어민들의 삶. 부부가 함께 고깃배를 탄다. (박두웅 기자)

서산에서 출발해 천수만과 만나는 맨 끝 바닷가 마을 창리는 왼쪽에는 간월호, 오른쪽으로는 부남호, 즉 적돌만을 양쪽으로 두고 바다로 툭 튀어나온 곶과 같은 지형으로 동아반도라 불렸다.

적돌만은 간척사업 이후 내륙으로 편입돼 버렸고 만 가운데를 흐르는 하천을 적돌강(積乭江)이라 불렀다. 원래 이름대로라면 A지구는 적돌만 간척지, B지구는 천수만 간척지라 이름을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

창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1980년대 현대에서 천수만 방조제를 막고 난 이후다.

 ‘천수만(淺水灣)’...일본 비밀 군사지도에 기록된 용어
 천수만 간척지를 예언한 ‘쌀 위에 있는 부석’ 이야기

옛 창말포구. (박두웅 기자)
옛 창말포구. (박두웅 기자)

천수만(淺水灣)은 한자 그대로 바다가 육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얕은 물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유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명치 11년(1878년)에 제작된 ‘조선국천수만약도(朝鮮國淺水灣略圖)’와 ‘천수해만(淺水海灣)’에 그 이름이 처음 나온다.

‘조선국천수만약도’는 일본 참모본부 장교들이 제작한 비밀군사지도다.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국가 지도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전국 군현지도집 『1872년 군현지도』에 화변면이라 표기된 곳이 현재의 부석면이며, 끝부분이 창리로 ‘주사창(舟師倉)’이라 쓰여 있다.

그 양옆으로 흑서(黑嶼)와 간월도(看月島)가 묘사돼 있다. 여기서 흑서(黑嶼)는 검은여로 추측된다. 검은여와 관련 유명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의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해 불경을 공부하던 시절에 지엄 법사라는 고승의 문하에 들어가서 수학했는데, 의상이 공부를 열심히 한 데다 머리 역시 총명해 그의 이름이 주변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의상을 흠모하는 여인이 생기게 됐는데 그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 그 여인은 의상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하자 바다에 투신, 용이 돼 의상을 쫓아다니며 그를 보호했다는 전설이다. 

검은여 전경. (박두웅 기자)
검은여 전경. (박두웅 기자)

의상이 도비산에 부석사를 창건할 즈음 동네 사람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일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용이 된 그녀가 큰 바위를 공중에 둥둥 띄우고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며 벼락을 내리쳤고, 그 바위가 바다 가운데로 날아가 현재의 위치에 떨어졌다고 전해온다.

또 다른 이야기는 ‘쌀 위에 있는 부석’이라는 전설로 2016년 발간된 부석면지에 기록돼 있다. 

예로부터 검은여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흘 먹을 양식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반신반의하면서 항상 궁금해했다. 그런데 1982년 천수만 방조제가 만들어지고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흘 동안 먹을 곡식이 잠겨 있다고 한 말이 이 간척지를 예언한 것이라고 놀라워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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