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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조각사의 변화를 만든 정서영의 '조각적 순간'

[리뷰] 조각사의 변화를 만든 정서영의 '조각적 순간'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입력 2022.09.06 15:50
  • 수정 2022.09.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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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영 개인전 '오늘 본 것'

'전망대'. (임동현 기자)
'전망대'. (임동현 기자)

[뉴스더원=임동현 기자] '작품들을 굳이 '조각'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야 했을까? 조각의 틀을 깬다고 해놓고 다시 '조각'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 조각과 설치미술이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틀을 깬다고 해도 결국 본질에 맞서야 한다는 모순점을 어떻게 극복할까라는 숙제도 이제 작가들에게 주어진 것 같다'.

지난 6월 기자가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의 <조각충동>전을 보고 나서 쓴 글이다.

깎고 새겨서 만드는 조각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재료를 조립하고 세우면서 새롭게 재현된 조각이 현재의 추세가 됐지만 갑작스럽게 조각이 변화된 과정, 조각과 설치미술의 차이점에 대한 궁금증이 마치 하나의 숙제가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조각이 변화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9월, 기자는 한 전시를 보며 이 궁금증의 힌트를 발견하게 됐다. 지난 1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서영 개인전 <오늘 본 것>.

그가 한창 활동하던 1990년대의 주요 작품들과 신작들이 선보인 전시를 보면서 '90년대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조각의 역사로는 지금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파도'. (사진=임동현 기자)
'파도'. (임동현 기자)

정서영은 조각을 어떤 것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 감정, 상황 등의 다양한 요소가 변화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다가 불현듯 관계를 맺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형(形)'이고 그 찰나가 바로 '조각적 순간'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사물로 표현하기보다 사물에 내재된 사회적인 네트워크, 영향력을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는 사물의 형태를 가져온 것이 그의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조각'이다. 정서영은 "개념미술가가 아닌 조각가"라고 자신을 밝힌다. 전형적인 방법과는 다르지만 물질을 통한 작업으로 보이는 형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그 작업이 바로 조각이기 때문이다.

<전망대>(1999), <파도>(1998-2022) 등의 작품은 커다란 무엇인가를 표현하기보다는 형태를 통해 사물을 투사하고 동적 혹은 무형의 것을 조형예술로 표현하려는 그의 시도를 엿볼 수 있다. '파도가 꼭 커야할 필요는 없다. 작더라도 파도는 친다. 파도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의 '파도'를 보며 작가의 생각을 추측해본다.

'아이스크림 냉장고, 케이크 냉장고'. (임동현 기자)
'아이스크림 냉장고, 케이크 냉장고'. (임동현 기자)

1990년대 흔한 산업 재료인 비닐민속장판 '리놀륨' 위애 음성 표현인 '어'를 그리고(<-어>, 1996), 원목마루 무늬의 비닐장판 위에 고딕체 문장과 조각을 놓으며(<유령은 좋아질 거야>, 2005), 모델하우스의 싱크대를 떼내고 재조립한다. (<싱크대>, 2011)

지금은 단종된 유리와 함께 빛이 새로운 조각의 재료로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냉장고, 케이크 냉장고>(2007), 화면에 있는 호두에 집중하게 하면서 이것을 '세계에 대한 집중'이라고 표현하는 <세계>(2019) 등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조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세상이 무섭게 변해가는 1990년대, 조각이라고 변화가 없을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변화될 수 밖에 없는 시대였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던 작가가 정서영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갑작스런 조각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한 것이 그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신작들 중에는 재미있는 제목이 달린 작품이 있다. <텐트 하나쯤은 칠 줄 알아야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가운데 서고 가운데 눕고 가운데를 열어서 밖으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텐트 하나쯤은 칠 줄 알아야지'. (임동현 기자)
'텐트 하나쯤은 칠 줄 알아야지'. (임동현 기자)

정서영은 작품이 만들어진 후 작품을 만들기까지 과정을 생각하고 또 다른 작업으로 제목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제목이 어떤 작품의 내용을 규정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제목의 의미를 알려고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저렇게 볼 수 있겠구나' 그리고 자기 생각으로 인정하면 된다.

어떤 해석이나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하나의 형태를 표현하는데 집중한 정서영의 작품을 우리는 '오늘 본다', 그 '오늘 본 것'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서영이 표현한 형태를 따라가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생각해본다면 정말 재미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 조각의 변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추가한다.

전시는 11월 13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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