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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라지는 마을...충남 서산 한센인 정착촌 ‘영락마을’

【기획】사라지는 마을...충남 서산 한센인 정착촌 ‘영락마을’

  • 기자명 박두웅 기자
  • 입력 2022.08.05 14:27
  • 수정 2022.08.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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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치유의 마을’로 재탄생 되길...”

충남 서산시 영락마을 전경. (사진=박두웅 기자)
충남 서산시 영락마을 전경. (사진=박두웅 기자)

[뉴스더원 충남=박두웅 기자] 한센인 정착촌 기획취재로 만난 영락원 주민들과의 인연이 3년째를 넘어서고 있다. 폭염이 계속되거나, 태풍이 불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 집처럼 걱정이 앞선다. 지난 폭우에도 마을 비탈길이 무너져 내려 보수공사를 앞두고 있다. 

최근 지역에서 영락원이 있는 고풍저수지에 둘레길과 출렁다리를 설치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십 년이 일 년같이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할 일들이 있다. 그를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고풍저수지 전경. (사진=박두웅 기자)
고풍저수지 전경. (사진=박두웅 기자)

# 고풍저수지는 마을에 처음 들어온 날처럼 푸르다. 당시 그녀 나이는 꽃다운 31살. 남편을 따라 한센인 정착촌인 ‘영락원’에 들어왔다. 벌써 45년 전 이야기다. 뒷동산 진달래꽃보다 더 아름다웠던 그녀는 이미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당시 정부는 한센인 정착 마을을 조성하는 정책을 폈다. 한미재단은는 수용되는 한센인들에게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블록으로 지은 집을 나눠줬다. 고풍저수지를 끼고 인적이 없는 골짜기에 30여 채의 성냥갑 같은 집들이 마치 수용소처럼 늘어섰다.

# 모진 게 생명이다. 사라진 꿈을 애써 잡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 의미도 없는 하루에 또 다른 하루가 보태질 뿐이다. 마을엔 한 달에 한 번꼴로 정부에서 배급식량이 나왔다. 배급이라고 해봐야 쥐꼬리보다 좀 나은 편이다.

아침이면 몇몇 마을 남정네들이 부산하다. 온갖 손가락질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성치도 않은 몸들을 이끌고 동냥을 나갔다. 시내로 나가면 아이들까지 ‘문둥이’라고 돌팔매질을 해댔다. 전염성이 없는 음성임에도 문둥병을 퍼뜨린다며 적개심을 드러내고 노골적으로 몰아냈다.

# 2019년 할배가 그녀 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돼 간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부터 남편은 매일 퍼마시던 술도 마다하고 얼굴은 시커멓게 변해갔다. 입에 달고 살던 욕지거리도 하지 않았다. “나, 이제 집에 데려다줘.” 진통제를 맞고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입술에서 나온 ‘죽음’이라는 첫 마디다.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온 평생이었는데, 무엇이 그리 무서웠는지 그녀는 ‘죽음’이라는 단어에 소름이 돋았다. 

# 그녀에겐 눈물이라는 단어는 이제 없다. 차라리 소리 내 울 수만 있다면 숨이라도 쉴 수 있으련만. 한 많은 그녀의 한숨과 눈물은 이미 고풍저수지를 채운 지 오래였다.

서산 한센인 정착촌 영락마을 전경. (사진=박두웅 기자)
서산 한센인 정착촌 영락마을 전경. (사진=박두웅 기자)

사라지는 마을... 서산 한센인 정착촌 ‘영락마을’

영락원은 운산 감리교회 송은광 목사가 1954년 4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운산 용현리 강당골 깊은 골짜기 땅을 기증하면서 한센인들이 모여들며 만들어진 정착촌이다. 당시 운산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 송 목사는 운산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뒤 운산 성결교회 김현욱 목사에 이어 정순석 목사가 그 뜻을 이었다. 교회는 천막이고 마을 사람들의 집은 움막이나 판잣집이었다. 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는 몸으로 삶의 의지가 전연 없었다. 정 목사는 그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며. 자립의 의지를 심어줬다.

정 목사는 주민들과 함께 먼저 식량 자급을 위해 비탈진 황무지를 개간했다. 천박한 땅이지만 조금씩 작물이 자라고 소출도 생겼다. 한센인들에게 ‘살아보자’는 의욕이 싹텄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마을 사람들은 서로 합의해 천막 교회를 헐고 돌과 흙으로 아담한 교회당도 지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사는 땅은 대부분 국유지였으므로 불안했다. 정 목사는 그들에게 땅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올라가 교회와 지인들을 찾아가 영락원의 형편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받은 지원금으로 국유지를 불하받아 가정마다 땅을 분배했다.

비탈진 지형에 따라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한미재단이 지어 준 주택들은 많이 개량됐지만, 그동안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곳곳에 폐가들이 눈에 띈다. (사진=박두웅 기자)
비탈진 지형에 따라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한미재단이 지어 준 주택들은 많이 개량됐지만, 그동안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곳곳에 폐가들이 눈에 띈다. (사진=박두웅 기자)

어느 날 정 목사는 신문을 보다가 한센인 정착촌을 지원하는 한미재단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밤을 새워 기도한 뒤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눈물로 호소한 그는 마을 주택 30동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내려왔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1967년 준공식 날 한미재단 대표와 서산군수가 와서 축사하고 마을 사람들을 격려했다. 당시는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경쟁적으로 펼쳐지던 때였다. 군수가 나환자촌 사례를 중앙본부에 보고했더니, 청와대까지 알려져 KBS의 ‘인간 승리’ 제작팀이 내려와 정 목사와 주민 대표들과의 대담과 나환자촌을 전경과 그들이 일하는 모습 등을 촬영하고 방송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 목사가 60세가 되던 1981년 신자들과 함께 밭을 갈다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가서 과로로 응급 치료를 받았으나 이제 하늘나라에 와서 안식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영락마을 골목길. 비탈진 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두웅 기자)
영락마을 골목길. 비탈진 곳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두웅 기자)

현재 영락원에는 20가구 3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7년 전인 2015년에 비해 14명이 줄었다. 급속히 소멸해 가고 있는 마을 중 하나다. 주민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다. 마을 공동재산으로 경로당과 마을회관으로 쓰는 건물이 1동 있고 창고 1동과 폐허가 된 빈집과 축사들이 곳곳에 방치돼 있다.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이곳 저곳에 폐가가 널려 있다. (사진=박두웅 기자)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이곳 저곳에 폐가가 널려 있다. (사진=박두웅 기자)
마을에 방치된 폐가. (사진=박두웅 기자)
마을에 방치된 폐가. (사진=박두웅 기자)

한센인 피해 사건 피해자들은 2012년 1월부터 국비로 15만 원씩의 생활지원비를 지급받고 있다. 시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2008년 심야 보일러를 설치했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기초생활수급자 19세대에 2,200만 원을 들여 단열, 보일러 교체공사와 경로당 개·보수를 했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흘렀다. 기자가 찾아간 마을에는 곳곳에 방치된 축사와 홀로 살던 한센인이 사망하면서 늘어만 가는 폐가옥이 소멸해 가는 마을을 대변하고 있었다. 

한국한센인총연합회 이길용 회장. (사진=박두웅 기자)
한국한센인총연합회 이길용 회장. (사진=박두웅 기자)

한국한센총연합회 이길용 회장은 “개발이 진행되면 정착 마을은 철거 대상에 들어간다. 일정 부분 보상을 전제로 이주시킨다. 문제는 그 보상금으로는 다른 곳에 가서 집을 살 수 없다. 양도세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들 스스로 자체 개발을 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자금이 없는 상황에서 질이 좋지 않은 개발업자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인권 차원이 아닌 도시개발 차원에서 정착 마을을 이전시키거나 해체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은 약자의 목소리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정책 또한 순수한 인권 차원이 아닌 돈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이 회장은 “2021년 현재 국내에는 총 2,505명의 한센인이 82개 정착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충남에는 한센인 정착 마을 두 곳이 있다. 남은 가구 수도 40여 가구에 불과하다. 충남도의 경우 지원금 17만 원이 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10년이다. 10년이며 거반 다 돌아가신다.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2, 3세들을 생각해야 한다. 언론도 한센인의 문제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치유의 마을’로 재탄생 되길...”

폐교된 영락분교 모습. 지금은 제3자에게 매각된 상태다. (사진=박두웅 기자)
폐교된 영락분교 모습. 지금은 제3자에게 매각된 상태다. (사진=박두웅 기자)

“자식들 뒷바라지하기 위해 온갖 멸시와 손가락질에도 맨손으로 밭을 일구며,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이제는 다 늙어서 힘이 없죠. 땅을 매각하고 마을을 떠난다고 그 적은 돈으로 나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이제라도 환경이라도 개선돼 누가 와서도 참 살기 좋은 동네, 누구나 아무 편견 없이 스스럼없이 출입할 수 있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어요."

고풍저수지 출렁다리 설치 TF 출범식. (사진=박두웅 기자)
고풍저수지 출렁다리 설치 TF 출범식. (사진=박두웅 기자)

최근 고풍저수지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출렁다리 설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백제의 미소 국보 마애삼존불이 있는 용현계곡과 보원사지 복원사업에 이어 유적 전시관까지 연계하는 사업에 고풍저수지 출렁다리를 설치, 낙후된 운산면 지역경제를 되살리자는 면민들의 염원이다. 지난 8월 2일에는 운산면사무소에서 ‘고풍저수지 출렁다리 설치 TF 출범식’도 열렸다.

영락원 주민들은 “용현계곡으로부터 이어지는 둘레길이 조성되고 자연과 벗하는 아름다운 마을이 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락원이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치유의 마을’로 재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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