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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엄마

[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엄마

  • 기자명 이형린
  • 입력 2022.08.06 00:00
  • 수정 2022.08.0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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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 동화작가
이형린 동화작가

[뉴스더원] 3.5.10.

3.

얼마 전에 엄마가 청주에 왔다. 둘째가 청주에 약속이  있어 오는 김에 따라 나섰다. 딸내미들 어찌 사나 궁금하셨나보다.

다 같이 셋째가 일하는 가게에서 밥을 먹었다. 일인당 삼만 오천 원 하는 한식 코스요리다.

엄마는 뭐든 즐길 줄 아는 분이다. 이 맛은 어떻고 저 맛은 어떻다 소소한 맛까지 느끼며 맛있게 드셨다. 그런 엄마가 지금껏 뭐하나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었던 게 늘 짠하다. 식사가 끝날 때쯤 엄마가 넌지시 말한다.

"이거 계산 했나?"

"왜?"

"내가 사께. 나도 돈 있다."

일하다 잠시 들른 셋째가 무뚝뚝하게 말을 던졌다.

"내가 벌써 했다."

오랜만에 놀러와 딸내미들이랑 밥 한 끼 같이 먹는 건데도 엄마는 마음이 쓰인다. 딸한테 대접 받기에도 엄마에게 삼만 오천 원 한 끼는 그렇게 크다.

5.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랑 둘째가 일찍 도착해 조금 기다리라고 말했다. 둘째가 티셔츠 몇 장 산다며 옷 구경하고 있겠다고 한다. 헐레벌떡 갔다.

옷가게서 엄마를 만났다. 간 김에 흰 반팔 셔츠를 하나 샀다. 엄마가 참하니 딱 예쁘다고 했다.

"나도 그거랑 똑같은 거 남색 샀는데 편하고 예쁘더라. 카키색도 하나 갖고 싶드라."

"그라믄 사라. 내가 하나 사주께."

"은자. 아이다."

"와? 그냥 하나 사라. 얼마 한다고."

"그래도 되까? M이면 맞으까? 홍홍."

엄마는 못이기는 척 카키색 셔츠 골랐다. 이때다 싶었는지 암말도 없던 막내가 척척 걸어가서 묻지도 않고 지 셔츠를 골라왔다.

"난 이거."

“하하하. 그래."

계산을 하고 나오니 엄마가 또 부끄럽고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돈 많이 써가 우야노."

오만원도 안하는 셔츠 한 장에 엄만 미안해진다. 그걸 보는 나도 미안하다. 내가 가난해서 그런가 싶어서 말이다.

10.

엄만 생일날마다 통장으로 십만 원을 보내준다. 그리고 '우리 딸 생일 축하해. 맛있는 거 사먹어.'라고 문자를 보내온다.

그 십만 원으로 정말 맛있는걸. 사먹은 적도 있고, 빵꾸 난 카드값으로 사라져 버린 적도 있고 뭐 그렇다. 엄마의 십만 원은 받을 때마다 늘 새롭게 울컥하게 한다.

"피~"하며 입을 삐쭉대고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져서 코를 찡끗거리게 만든다. 나한테 엄마의 생일선물 십만 원은 그렇게 눈물겹다.

밥값을, 선물 값을 딱 얼마라고 법적으로 액수를 정하는 게 좀 희한하다 싶기도 하다. 그렇게 법으로 정해야 할 만큼 내가 사는 세상이 염치가 없구나 싶어 좀 서글프다.

그마저도 경제를 위해 액수를 조정하자고 한다더라. 모르겠다. 딸이 사주는 밥도 삼만 원이 넘어 맘이 쓰이는 엄마랑 살아서 그런가. 내 밥은 내 돈 주고 먹는 게 너무 당연하다 느껴서 그런가.

내게 3만 원, 5만 원, 10만 원은 이런 돈인데, 어떤 사람들에겐 돈도 아닌가 보다.

기억

잊지 말아야지 하는 말.

"장애는 아픈 게 아니야."

그렇지 하면서도 매번 잊어버린다. 나도 별 수 없구나 싶다. 나아지겠지.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니까.

늘 그렇듯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참 우스워 보일 수 있겠지만, 난 그냥 늘 그랬다.

6개월이 흘렀고 어쩌다보니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사년이 흘렀다. 오십 번쯤 싸우고 열 번쯤 헤어졌다. 그리고 아주 조용한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믿음이 없어도 교회에 가듯, 사랑이 없어도 연애는 계속 되었다.

동생을 따라 동대문 새벽시장을 다녀오던 날이었다. 물기 가득한 차창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생각했다. 헤어져야지.

열한 번째 이별통보를 했고 늦가을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봄이 왔다. 녀석의 프로필 사진이 바뀐 걸 본 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사랑이 없어도 연애를 하듯, 사랑이 없어도 질척거릴 수 있다. 울컥 화가 나 문자를 보냈다.

"그새 애인 생겼어?"

"애인 아니야. 별 사이 아니야. 우리 다시 만나자."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한 건 미련도 뭣도 아니다. 그냥 배알이 꼴리는 거다. 며칠 후 프로필 속의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 녀석이 나와 헤어지기 몇 달 전부터 자기를 만났다고 말했다. 나쁜 놈이니 둘 다 녀석을 만나지 말자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금방 정리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다시 며칠 뒤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녀석을 너무 사랑한다고 헤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알겠다고 했다. 불쾌한 일들이지만 배알이 꼴린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여자는 녀석과의 사이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게 전화를 했다. 대가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에게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 녀석은 알겠다고 했다.

한동안 전화가 없었다. 거지같은 기분을 떨쳐 냈을 때쯤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녀석이 자기 몰래 선을 봤다고 한다. 내게 자기와 같이 찾아가 혼을 내주자고 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동생은 처음부터 녀석을 싫어했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녀석이 멍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녀석이 멍청이란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여자도 이제 아는 눈치다.

여자는 진짜 내가 자신과 같이 녀석을 혼내주러 가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닐 거다. 그저 같이 욕을 해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거절하자 여자가 말했다.

"진짜 많이 사랑하셨나 봐요."

말투에 섞인 비웃음이 느껴졌다.

"네."

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런 소리도 낼 수 있구나 싶은 맑은 목소리였다. 여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을 조용히 있던 여자는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는 여자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지나간 사랑에 검열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사람은 정말 날 사랑했을까. 우린 사랑한 걸까. 내가 그 사람에겐 그저 무료한 날들의 일탈은 아니었을까.

그러다 묻는다. 넌 많이 사랑했니.

"네".

신호등을 기다리다 미친 애처럼 혼잣말을 내뱉곤 피식 웃는다.

'그래. 난 내 사랑 하는 거지 뭐.'

또 몇 달 뒤 같은 검열을 할지 모른다. 그리고 또 같은 대답을 할 거다. 그 옛날 그녀에게 말했던 것처럼 내게 말이다.

우리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 사랑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눈치꽝

자꾸 우울해져서 아예 아프기로 하고 4차 잔여 백신 예약을 했다. 집에서 꽤 멀리 있는 병원이다. 땡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병원에 갔다.

"약 드시는 거 있으세요?

"아뇨"

"그럼 혹시 기저질환 있으세요?"

"아뇨"

내심 나의 건강함에 뿌듯해 하고 있는데, 간호사 두 분이 속닥속닥 심각한 얘기를 나눈다. 난 어리둥절해 있는데 한 간호사분이 그런다.

"이게 잔여백신이라도 18세이 이상 50세 미만의 기저질환이나 호흡기 쪽으로 문제가 있는 분들만 맞을 수 있거든요."

"아. 몰랐어요. 그럼 전 못 맞나요? 이 더위에 엄청 멀리 왔는데."

나는 입술이 댓발 나왔다.

"혹시 약 드시는 거 있으세요?"

"기저질환 없으세요?"

"당뇨나 고혈압 같은 거 없으세요?"

"혈압이 좀 높다거나."

아까 없다고 했는데 왜 자꾸 물어보나 짜증나게. 없다니까. 없어요. 없어. 병원을 나서는데 의사 샘까지 다 나와 죄송하다고 하셨다.

"죄송은요. 제가 잘못 안건데요. 안녕히 계세요."

병원을 나와 몇 발자국 걸으니 알겠다. 고생스럽게 병원까지 예약하고 왔는데 그냥 고혈압이 좀 있어요 하면 모른 척 맞춰주려 했던 거다. 눈치 없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여간 나 눈치 없는 건 알아 줘야 한다.

아프면 착해진다.

생리를 하면 화가 난다.

둘 다 동시에 발생한 지금, 조용해졌다.

착한 사람이 화가 나면 왜 조용한지 알 것 같다.

 

작가의 말 : 너무 더운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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