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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조선, 이순신의 ‘거북선(龜船)’ 외 ‘거북차(龜車)’도 있었다!

【기획】 조선, 이순신의 ‘거북선(龜船)’ 외 ‘거북차(龜車)’도 있었다!

  • 기자명 박두웅 기자
  • 입력 2022.08.0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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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정랑 한여현(韓汝賢) “서산 출신 안열 거북차 제조” 기록
충청지역 유일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 1582년~1619년)에서 밝혀지다

호산록 중 거북차(龜車)를 제작한 안열에 대해 기록한 부분 (사진=박두웅 기자)
호산록 중 거북차(龜車)를 제작한 안열에 대해 기록한 부분 (사진=박두웅 기자)

[뉴스더원 충남=박두웅 기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외에 육지에서는 거북차(龜車)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충청지역 유일 사찬읍지(私撰邑誌) 호산록(湖山錄)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호산록은 158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 서산군으로 부임해왔던 고경명(高敬命) 군수의 권유를 받아, 한경춘(韓慶春)이 집필을 시작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중단되었다가 전란이 끝난 후 다시 그의 아들 이조정랑을 역임한 한여현(韓汝賢) 선생이 다시 집필해 1619년에 완성된 서산군 사찬읍지다.

재편찬한 호산록에 정자로 기록된 거북차의 제작자 안렬에 대한 기록 부분 (사진=박두웅 기자)
재편찬한 호산록에 정자로 기록된 거북차의 제작자 안렬에 대한 기록 부분 (사진=박두웅 기자)

호산록 인물(坤) 편에 보면 안열(安㤠)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안열은 어려서부터 무예를 배우고 일찍 금군(禁軍)이 되었다. 손무(孫武)와 오기(吳起)의 병법을 좋아하여 스스로 변방에서 공을 세우겠다고 하며 공명을 이룰 것을 기약하였다. 일찍이 말하기를, ‘대장부가 천지 사이에 태어나서 어찌 첩들의 무릎을 베고 헛되이 세월을 보내는 것을 본받겠는가.’라고 했다. 이에 묵묵히 신묘한 지혜를 운용하여 거북차(龜車)를 제조하였다. 위에는 덮개를 씌우고 아래는 움직이게 하였으며 수레 외부에는 칼과 창을 삼면에 두루 꽂았다. 수레마다 안에는 전투병 30명씩 태우고, 또 내부에 수레를 밀고 다니는 사람 30명을 두어서, 적군이 가까이 있으면 화살을 쏘고 멀리 있으면 포를 쏘게 했으니 이것이 고대의 거전법(車戰法)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거북차(龜車)는 북방 오랑캐를 방어하는 데 가장 유리했다’고 했다. 오랑캐 기마병이 비록 폭풍우처럼 신속하게 쳐들어오더라도 거침없이 돌진할 수도 없고, 또 거북차 위를 뛰어넘어 지나갈 수도 없었다고 했다. 

안열은 이 모든 사실을 써서 상소를 올렸으나 조정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현실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아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안타까워하였다고 했다.  

거북선,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
태종실록(1413년) “거북선과 왜선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

최근 개봉된 영화 ‘한산: 용의 출현’에서 위압감 넘치는 거북선의 비주얼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거북선의 정식 명칭은 귀선(龜船)으로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인 판옥선을 개량해 2층 전투공간에 덮개를 씌우고 칼과 송곳을 꽂아 만든 일종의 돌격선이다. 

세간에는 이순신이 직접 철갑선인 거북선을 개발했고 이에 직접 탑승했을 거라는 통념이 있으나,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의 독창적인 창작물은 아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거북선이 존재했음이 기록상에 남아 있다. 조선의 거북선은 고려시대에 개발되었던 군함 과선(戈船, 배에 창칼을 박아 적의 침입을 막음)과 여말선초의 검선(劍船)을 참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 수군은 건국 직후부터 왜구의 침입에 대항하여 새로운 무기와 신형함 개발을 해 왔다. 전선(戰船)의 경우 조선 초기의 주력함인 대선에서 성종 때의 맹선으로 그리고 명종 시기에 와서는 판옥선이 주력함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봉건 조선 왕조에서 기존 규정에 없는 새로운 군함을 만든다는 것은 명장 이순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라는 것이 역사적 평가다. 혹여 거북선이 이순신의 독창적인 개발품이 아니었다고 하여 실망스럽다거나 그의 위대함에 대한 평가는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통제원 남교에서 머무르다. 임진도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 -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1413년) 2월 5일 갑인 1번째 기사)

“거북선(龜船)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 좌대언 탁신이 병비에 대해 올린 사의 조목 (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1415년) 7월 16일 신해 2번째 기사)

태종실록에 기록된 거북선에 관한 언급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것과는 이름은 같지만 구조도 같은지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아 알 길이 없다.

재편찬한 호산록 표지 (사진=박두웅 기자)
재편찬한 호산록 표지 (사진=박두웅 기자)

간재 이덕홍, 거북차(龜車) 필요성 진언
바다에는 귀선(龜船)을, 육지에는 거북차(龜車)를 사용하자
서산 안열의 주장과 일맥상통한 주장 펼쳐

간재 이덕홍(1541~1596)는 퇴계 이황의 문하생으로 전통 학문인 성리학뿐만 아니라 과학이나 국방과학에 깊은 조예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따라 성천까지 호종하였다. 이때 왕세자에게 전술상의 대책을 건의한 상왕세자서(上王世子書)란 상소를 올린다. 1953년 정월에는 행재소에 나아가 선조에게 왜구를 방어할 수 있는 대책을 상소하는 상행재소(上行在疏)를 올렸는데 이 상소문에서 유명한 귀갑선도(龜甲船圖)의 제작을 진언하며 바다에는 귀선(龜船)을 사용하고 육지에는 거북차(龜車)를 사용하자고 건의했다. 
거북차(龜車) 필요성을 진언한 서산의 안열과 영주의 이덕홍의 상소는 일맥상통한다. 다만 안열은 실전에서 거북차를 직접 제작해 실전에 사용한 점이 다르다.  

비운의 실학자 이덕리, 18세기 다시 거북차(龜車) 제안
정약용의 저서로 잘못 알려진 「상두지(桑土志)」에 기록

최근 ‘실학번역총서’의 하나로 「상두지(桑土志)」가 간행됐다. 실학박물관의 지원으로 한양대 정민 교수팀에서 번역한 것이다. 정민 교수는 그동안 정약용의 저서로 잘못 알려졌던 「상두지(桑土志)」의 저자가 ‘이덕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근 번역된 이덕리(1725~1797)의 「상두지(桑土志)」를 보면 거북차(龜車)를 고안해서 제시한 대목이 있다. 이순신의 거북선(龜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데, 수레에 장갑과 화력을 갖추고 창칼을 갖추어서 적진을 돌파하는 데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다.
또 그 이전 기록으로는 1630년 1월, 괴산의 진사 권대신이 적을 막기 위한 방책을 적어냈고 직접 구거(거북차와 유사할 것으로 추정)를 만든 것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인조는 나중에 보겠다고만 했다고 전한다. 그러다가 효종 3년 1월에 다시 등장한다. 전 주부 박산남의 상소를 보고 전라병사 구인기가 제작해서 실험해보았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 구거를 실험만 하고 폐기된다.

권대신과 박산남의 구거가 어떤 형태였는지는 기록이 없다. 다만 실험만 하고 폐기된 사유에 대해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고, 실제로 끌어보니 70명을 동원해야 하는 데다 언덕에 구애받고 진창에 빠지고 해서 하루 10리도 가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한편, 이덕리는 이순신의 거북선을 육상전에 응용한 거북차(龜車), 압록강 빙판에서 벌어질 전투를 대비한 빙차(氷車) 같은 신무기를 제시하기도 했다.

호산록 서문 (사진=박두웅 기자)
호산록 서문 (사진=박두웅 기자)

에필로그

손자(孫子)는 손자병법에서 “적이 오지 않기를 믿지 말고, 대비하고 기다리는 나를 믿으라(無恃其不來 恃吾有以待)”고 했다. 우리가 유비무환(有備無患)의 태세를 갖추는 것만이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서 거북선, 비격진천뢰, 화차 등 과학기술 혁신으로 국난을 극복한 기록이 남아있다. 호산록의 거북차(龜車)에 대한 기록도 그중 하나다. 

2021년 호산록의 보존과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호산록 한여현선생 기념사업회’가 발족 되어 활동하고 있다. 특히 기념사업회는 거북선의 모티브로 추정되는 거북차(龜車)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학술적 고증과 재현 및 전시,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龜船)과의 관련 연관성을 학술적 규명을 통해 후대에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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