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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 무비] 다시 찾아온 성웅의 바다 '한산: 용의 출현'

[이은선의 픽(pick) 무비] 다시 찾아온 성웅의 바다 '한산: 용의 출현'

  • 기자명 이은선
  • 입력 2022.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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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 이름만으로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하는 존재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순신이 대표적일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 존경받는 역사적 명장 그 이상의 성웅(聖雄). 영화 <성웅 이순신>(1971)과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 KBS) 등을 비롯해 문학과 영상 매체 등에서 여러 차례 단골로 다뤄진 인물이기도 하다. 충무공이 직접 쓴 <난중일기>를 비롯, 남아있는 소수의 기록들은 그를 재해석하고 기억하는 귀한 자료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2014)을 시작으로 이순신 장군을 다시금 새롭게 주목한다. 그는 이것이 단일한 작업으로 마무리될 수 없다고 여긴 듯하다. 170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관객 수를 기록하며 한국 사회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명량>은 감독이 계획한 ‘이순신 3부작’의 시작점이었다.

최근 개봉한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은 두 번째 작품이며, 이후 공개될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미 촬영을 마쳤다. 이순신 장군에게 중요했던 세 번의 전투를 각기 다른 세 명의 이순신이 연기하는 것.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3부작을 종합적으로 바라봤을 때야만 성웅의 초상을 조금이라도 가늠하게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제언으로 다가온다.

<한산>은 1597년의 명량대첩을 그렸던 <명량>보다 시간상으로 5년 앞선 1592년이 배경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가장 크게 승리했던 한산도 대첩이 중심에 선다. ‘용의 출현’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조선의 난세를 극복할 영웅의 본격적 출현을 다룬다.

전작의 이순신이 육체와 정신 모두의 극심한 피로를 감내하며 전장을 이끄는 백전노장이었다면, 이번에는 침착한 전략가로서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최민식에 이어 박해일이 이순신을 연기한다.

영화는 한산도 대첩으로 향하는 과정과 그 결과 모두를 담는다. 이순신은 앞서 벌어진 사천해전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했지만 총상을 입은 뒤다. 거북선의 존재를 파악한 왜군은 이를 전설 속 괴물인 ‘복카이센’에 빗대며 두려워한다. 동시에 지상전인 용인 광교산에서의 승리로 기세가 오른 상황이기도 하다.

패배에 더해 임금 선조가 여주로 파천하면서 조선군은 수세에 몰린다. 바다를 수호해야 하는 장군의 고뇌는 깊어진다.

인물을 다루는 데 있어 <한산>은 <명량>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취한다. 얼마간 이는 의외의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순신 장군보다 일본 장수 와키자카(변요한)의 시선을 더 적극적으로 따르는 인상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과묵하고 차분하게 전투를 준비하는 사이, 스파이를 활용한 공격적 첩보전을 펼치는 쪽은 왜군이다. 이들은 위장 잠입해 거북선 설계도를 훔쳐낸다. 한편 조선에서는 투항한 항왜 군사(김성규)가 정보원 노릇을 한다.

러닝타임의 3분의 2가량은 조선과 왜군이 각각 전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는 일종의 심리전으로 묘사된다. 이순신은 실전 투입에서 파악한 거북선의 문제점을 파악해 수정하는 동시에, 한산 앞바다에서 ‘바다의 성’을 짓는 학익진을 펼쳐 압승을 거둘 수 있는 지략을 짠다.

물러설 곳이 없는 입장은 와키자카도 마찬가지다. 전투에 앞서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과정이 다소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것이 <명량>과의 구체적 차이를 만든다.

이순신이 차분한 침묵을 유지하는 사이 각 캐릭터들의 욕망과 사연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조선의 위대한 승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왜군을 단순한 무뢰한으로 그리지 않는다.

적군이 강력할수록 후반에 다가올 전투를 향한 기대감은 고조된다. 이는 <한산>이 와키자카의 시선을 경유해 파악하는 조선이라는 패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명량>의 이순신이 천하를 호령하는 불같은 기운을 뿜어내는 인물이었다면, <한산>의 이순신은 모든 상황을 비추는 물과 같은 장수다. 그는 앞으로 나서기보다 한발 물러나 있다.

그렇다고 그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이순신은 큰 산을 뜻하는 ‘한산(閑山)’의 본질처럼 거대하고 탄탄한 존재다.

덕분에 장수 어영담(안성기), 전라 우수사 이억기(공명)를 비롯해 이순신 장군을 보좌한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는 이순신을 둘러싼 배경이 아닌 하나의 또렷한 사연으로 다가온다. 거북선의 개발자 나대용(박지환), 이순신과 갈등을 빚는 경상 우수사 원균(손현주) 등의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침내 한산도 대첩의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명량> 역시 해상 전투에서 합격점을 받은 영화였지만 <한산>은 기술적으로 훨씬 발전한 인상을 준다.

역사를 고증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록의 공백을 메우는 상상력이다. 치열했던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실감이 생생한 가운데, 학익진 전술의 활약과 복병으로 등장한 거북선의 활용은 압도적 쾌감을 전한다. 최후의 최후까지 신중을 거듭하다 발포 명령을 내리는 이순신의 침착한 카리스마 역시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이순신 감독은 이 전쟁이 “의(義)와 불의의 싸움”이라 말한다. 옳은 것의 편에 서서 영웅과 리더의 자질을 이야기하는 이순신은 여전히 위대하며, 여전히 더 보고 싶은 대상이다.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국뽕’의 순기능이라면, <한산>은 그 최전선에 있다. 김한민 감독의 표현대로 이 영화는 “국뽕 너머의 국뽕”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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