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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자두

[이형린의 옴니버스 칼럼] 자두

  • 기자명 이형린
  • 입력 2022.07.02 00:00
  • 수정 2022.07.02 20:3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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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린 동화작가
이형린 동화작가

[뉴스더원] 5층 

시험 준비 때문에 조용청소년만 평소보다 늦게 수업이 끝났다. 잘가 란 인사를 하고 분필이 뽀얀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고 나왔더니 아직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아직 못 갔어?"

조용청소년이 살짝 미소를 짓는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했고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눴다. 학원으로 돌아와 정리를 하고 문을 잠그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고 보니 엘리베이터가 5층에 있다. 분명 방금 조용청소년이 타고 가는 걸 봤는데 이상하다. 순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5층엔 아무도 없는데 왜 엘리베이터가 5층에 있지. 종종 그런 적이 있어서 흠칫 했다.

'아!'

오늘에야 알았다. 조용청소년이 마지막에 가는 날이면 엘리베이터가 5층에 있었다는 걸. 나도 곧 집에 갈거란 걸 녀석은 알고 있다. 나 엘리베이터 기다리지 말라고 1층에서 내리며 5층을 눌러 놓은 거구나.

역시 멋짐과 다정함이란 타고 나는 건가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내내 기분이 좋았다.

'감동이야.'

초여름 내리는 비가 왠지 따끈한 보리차 같다. 녀석은 따끈한 사람이 될 거다. 

미스터리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란 엄마의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난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건데 말이지. 

엄지 

하루에도 몇 번씩 sns에 서명을 하는 날들이 있다. 엄지손가락 움직일 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쉽게 좋은 일을 하려는 내 게으른 꼼수이기도 하고, 세상엔 강력히 처벌해야 하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정말 강력한 처벌을 바라는 서명을 하다 알았다.

'강력한 처벌을 부탁드립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합니다.'로 바뀌어 있었다는 걸.

내가 가지는 당연한 권리이니 부탁이 아니라 요구가 맞겠지만, 사실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저 몸으로 알게 된 것 같다. 서명을 하고, 하고 하다 보니 내 엄지손가락이 알아 차렸나보다. 부탁으론 안 된다는 걸. 요구하고, 요구하고 요구해도 될까 말까 란걸.

어쩌면 내 엄지는 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랑 

오늘 여러 번의 친구 끊기를 했다. 프로필 사진이 무지개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먼저 친구를 끊어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울컥 화가 나서 끊은 사람도 있었다. 동성애가 뭔 자랑이라고 떼거지로 나와 떠느냐는 글 때문이다.

자랑하러 나온 거 아닐 거다.

비정규직이 자랑이라 나온 게 아니고, 아이를 잃은 슬픔이 자랑이라 나온 게 아니고, 부당해고를 당한 것이 자랑이라 나온 게 아니듯이 말이다.

처절한 집회는 폭동이고, 즐거운 집회는 자랑질이고, 가슴 저미는 집회는 궁상이 된다. 집회나 모임은 국민체조가 아니다. 형식은 얼마든지 다양화될 수 있다.

자랑하러 나오지 않았지만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발레를 하는 종교단체도 그리 당당한데 춤 좀 추면 어떻나. '혹시 이 땅에도 언젠가는'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 하루 좀 즐거워하면 어떻나.

아무도 자랑하지 않았다. 그것도 자랑이냐고 글을 쓴 그 사람만 자랑했을 뿐. 

깐깐징어 

해외 나가는 친구가 돌아오는 길에 큰맘 먹고 내게 선물을 사주려고 했나보다. 가방을 사줄까  하는데 어느 브랜드 좋아하냐고 동생한테 물었단다. 동생이 말했다.

"명품 같은 거 좋아도 안하는 사람이야.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 말고 이형린이 좋아하는 거 사줘."

듣고 보니 더럽게 까다롭다. 이래서 내가 선물을 못 받나 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깐깐징어 소리를 듣는 이유가 있다.

덧) 깐깐징어는 스펀지밥에 나오는 성격 고약한 오징어입니다.

자두

자두를 보냈다는 엄마의 문자 메시지가 있은 건 월요일이었다. 하시던 가게를 정리하면 과수원을 하시겠다는 아버지는 집 근처에 작은 사과밭을 하나 사셨다. 아직은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과를 수확할 정도는 아니다.

사과나무 옆에 자두나무를 몇 그루 심으셨는지 대뜸 자두와 양파를 택배로 보냈다고 하신다. 시장에 가면 흔한 게 자두지만 콩알만 한 자두를 따느라 수고하셨을 엄마 아빠를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자두는 이틀이 지나 수요일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과일이라 금방 상할 텐데 하는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깜짝 놀라시면서 택배 회사에 전화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조금 후 온 엄마의 전화는 날 광분하게 했다.

택배 직업 왈 화요일에 이미 배송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물건을 받기는커녕 전화한통 오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몰라 이리 저리 연락했더니. 택배 기사님이 화요일에 나와 통화한 후 집에 내가 없는 관계로 근처 마트에 맡겼다고 했다. 물론 난 전화를 받은 적도 없고 그 마트도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두 가격이야 얼마나 하겠나 마는 보내준 정성이 우스워지는 거 같아 울컥 화가 난 나는 택배 아저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내가 우리가 언제 통화했냐고 따지기 시작하자 아저씨는 내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기가 착각했다며 나와 이름과 번지수가 비슷한 다른 사람과 통화한 걸 나랑 한줄 알았단다.

세상은 참 경이롭다. 나와 이름이 비슷한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사람이 자두와 양파를 한 박스 시골에서 받았다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이성을 갖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내 물건은 어디 있느냐. 자기는 모른다고 한다. 그런 물건 받은 적이 없단다.

그럼 왜 배송완료가 됐느냐. 아마 다른 택배기사가 실수로 눌렀나 보다. 이 사람이 나랑 장난하나. 그냥 미안하다 분실한 것 같다 사고하면 지나갈 수도 있을 일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운송장 번호를 알려주면 내일 바로 확인하고 혹시 분실하거나 파손된 거면 보상하겠다고 해서 운송장 번호를 불러 주는 걸로 마무리 했다. 하지만 없어진 아빠의 자두보다 내 기분은 더 썩어가고 있었다.

여자끼리 사는 집에 혹시 해코지 할 수도 있으니 좋게, 좋게 지나가라는 엄마의 말이 아니었다면 참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신경 쓰지 말라며 자두를 새로 보내 주셨다.

다음날 아침 택배기사님의 전화가 왔다. 물건이 이제 도착했다며 싱글거리며 웃는 아저씨에게 욕지거리를 뱉어 주고 싶었다. 그 물건은 엄마가 다시 보낸 거리니까 대수롭지 않게 "아 그래요하고는 그럼 운송장 조회 해봐야 겠네 한다" 그럼 여태 조회도 안 해 봤단 말인가.

오후쯤 새로 보낸 자두를 들고 아저씨가 찾아왔다. 묻기도 전에 하는 말이 1984번지를 1784번진 줄 알고 잘못 배송했다며 그쪽 분이 잘 가지고 계셔서 택배를 찾았단다. 어제까진 자기는 그런 물건 받은 적이 없다고 해놓곤. 그래서 그럼 그거 어딨냐고 하니까 상했을 거 같아서 우선 사무실에 놔두고 왔단다. 사진을 찍어서 배상을 해준다나.

가격이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배상해주냐고 배상 규정 같은 게 있냐고 하니까 잘 모르겠단다. 사무실 들어가서 알아보고 전화 준다며 슬금슬금 뒷걸음쳐 나가는 걸 언제 연락 주냐고 따져 물으니 오늘 안으로 준단다.

슬금슬금 피해 나가는 모습이 짠해 사과 한마디 없이 이리저리 핑계에 거짓말만 하는 걸 보고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저씬 전화가 없다. 내 전화도 안 받는다.

엄만 그냥 지나가라지만 참을 수가 없다. 사과부터 했어야지. 거짓말만 하고.

내일은 사무실에 찾아가보리라 맘먹었다. 정말 자두 한 박스 가지고 법원 가겠다.

혼자 

가정폭력이 일어날 때, 가해자 이외의 다른 부모가 강력히 저항하지 않으면 아이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그걸 여덟살에 깨닫는 댜는 건 끔직한 일이다. 그 아이는 아무에게도 기대줄 모르는 어른이 된다. 물론 자기를 지키는 법을 일찍 배운 아이는 그럭저럭 잘 살아나갈 거다. 단지 서로 의지하며 사는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뿐. 그래서 나는 언제나 혼자다.

작가의 말 :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대개 가진 게 명예뿐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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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2022-07-03 06:28:07
'5층' 역시 멋짐과 다정함이란 타고 나는 건가보다. 그럴 수도 있지요. 한편, 작가님을 사랑하면 그런 멋짐과 다정함이 생겨나기도 하지요. '사랑의 힘' 은 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