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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명인 명창의 부채, '바람'과 '지향'이 담겼다

[리뷰] 명인 명창의 부채, '바람'과 '지향'이 담겼다

  • 기자명 임동현 기자
  • 입력 2022.06.29 17:31
  • 수정 2022.09.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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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국립국악원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사진=임동현 기자)
국립국악원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 (사진=임동현 기자)

[뉴스더원=임동현 기자] 부채. 옛 어른들이 여름을 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부채였다. 여름이 다가오는 단오날이면 부채를 선물하며 더위를 피하기를 서로 기원했고 서로에게 부채질을 해주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여름 정자에서 부채를 펴들고 살살 흔들면 세상 천국이 따로 없었다. 부채는 여름을 보내는 가장 낭만스런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부채는 명인, 명창들이 필수로 지녔던 물건이기도 했다. 판소리, 부채춤, 한량춤, 탈춤, 굿, 줄타기 등 춤과 노래, 연희에서 부채는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였다. 명창이 부채를 펴들고 소리를 뽑아내고 색색의 부채는 화려한 꽃의 움직임으로 표현됐다.

줄을 타는 재인에게 부채는 하나의 멋이자 중심을 잡아주는 듯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부채가 없으면 국악도 없다'는 생각이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 부채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이번에 시작됐다. 국립국악원의 기획전시 <명인 명창의 부채-바람에 바람을 싣다>가 그것이다. 이 부채들은 29일부터 9월 25일까지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채수정 명창의 부채. 아버지인 서예가 오당 채원식 선생의 글씨가 담겨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채수정 명창의 부채. 아버지인 서예가 오당 채원식 선생의 글씨가 담겨 있다. (사진=임동현 기자)

이번에 전시된 부채들은 판소리, 전통춤, 연희, 무속 분야 전통예술의 명인 명창 58명의 부채 80여점이다. 이 부채들은 명인 명창들의 공연을 위한 소품이기도 하지만 이 부채 안에는 이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이상, 지향점이 담겨져 있었다.

공연에서는 부채의 형상만 보이기 때문에 이를 알 수가 없지만 이번 전시에서 명창들이 사용한 부채를 직접 보는 순간 우리가 그간 알지 못했던 명인들의 꿈과 지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부채는 하나의 예술처럼 대대로 전수되고 전수받는 소품이기도 하다.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였던 故 오정숙 명창은 아천 김영철 화백에게 받은, 사슴이 그려진 부채 두 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부채를 각각 이일주 명창과 김소영 명창에게 물려줬다.

그리고 이일주 명창은 그 부채를 다시 제자인 장문희 명창에게 물려줬다. 이쯤되면 부채는 소품이 아니라 스승의 정, 스승의 가르침이라고 일컬을 만 하다. 뜻을 이으라는 의미를 부채의 물려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채수정 명창의 부채에는 '淸風明月本無價(청풍명월본무가)'(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본래 값이 없어 한 푼을 내지 않아도 무한히 즐길 수 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 글을 쓴 이는 바로 채수정 명창의 부친인, 진도 출신의 서예가 오당 채원식 선생이다.

좋은 소리를 많이 들려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글이 새겨진 부채라는 점을 비추어보면 채수정 명창이 공연을 앞두고 이 부채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라는 상상이 충분하 가능해진다.

한량무의 명인인 故 임이조 명인의 춤을 본 이는 부채에 '鶴無鶴(학무학)'(춤추는 모습이 학과 같다)이라는 글을 써줬고 승무 예능보유자인 故 정재만 명인은 그가 창작한 작품인 '청풍명월'의 첫 공연애 쓰일 부채의 그림을 직접 고안했다. 그 부채는 지금도 제자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량무의 명인인 故 임이조 명인의 춤을 본 이가 부채에 '鶴無鶴(학무학)'(춤추는 모습이 학과 같다)이라는 글을 써줬다. (사진=임동현 기자)
한량무의 명인인 故 임이조 명인의 춤을 본 이가 부채에 '鶴無鶴(학무학)'(춤추는 모습이 학과 같다)이라는 글을 써줬다. (사진=임동현 기자)

부채는 명창과 화가의 교류를 상징하기도 했다. 앞에서 오정숙 명창에게 그림을 그려준 이로 소개한 아천 김영철 화백은 실제로 오 명창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렸고, 승무 예능보유자인 故 이매방 선생의 춤을 보고 부채에 학을 그려 선물하기도 했다.

또 청봉 유기원 선생은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인 유영애 명창의 심청가를 듣고 부채에 심청가의 눈대목인 '추월만정(秋月滿庭)'의 가사를 담아 선물했다고 한다. 소리의 감흥을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그림을 부채에 그려 명창에게 선물하면 명창은 그 그림이 담긴 부채를 펴며 더 신명나게 소리를 한다. 그렇게 하나의 예술이 완성되어 간 것이다.

이 전시의 포인트 중 하나는 부채로 이루어진 8폭 병풍이다. 바로 신영희 명창이 소리인생 70년간 사용한 부채 중 24점을 모은 것이다. 글과 그림을 보면 70년간 소리를 전한 한 소리꾼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한영숙, 왕기석, 조통달 등 국악의 역사를 만들고 지금도 이끌고 있는 이들이 소장한 부채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전시는 뜻밖의 재미를 주고 있다.

8폭 병풍에 담겨진 신영희 명창의 부채들. (사진=임동현 기자)
8폭 병풍에 담겨진 신영희 명창의 부채들. (사진=임동현 기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물론 국악이 중심이라는 점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정보가 전시만으로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화가와 명인 명창의 교류가 부채에 담겨져 있다는 점을 본다면 누가 그린 그림인지, 그 그림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에 대한 정보가 조금 더 추가됐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이번 전시는 여름을 맞아 부채를 구경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한정된 공간이지만 넓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화가와 서예가들의 노력, 그리고 부채의 글과 그림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던 명인 명창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그리고 그 정성이 오늘날까지 국악의 발전을 이끌어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제목처럼 '바람에 바람을 실은', 부채 바람에 자신들의 지향점을 실은 부채의 시원함이 느껴지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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