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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학의 인문학 산책] 논어의 인문학⑳

[최규학의 인문학 산책] 논어의 인문학⑳

  • 기자명 최규학
  • 입력 2022.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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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학 명탄서원 논어 전임교수. 시인
최규학 명탄서원 논어 전임교수. 시인

[뉴스더원] 공문십철의 두 번째 과목인 언어에서 재아(宰我) 다음으로 언급된 인물은 자공(子貢, BC520~456, 64세 사망)이다.

위나라 출신으로 성은 단목(端木)이고 이름은 사(賜)이며 자공(子貢)은 자(字)이다. 공자보다 31세 연하였다. 당시 최고의 외교가였으며, 경제적 수완이 탁월하여 사마천 <사기>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도 등재되었다.

계씨의 가신을 지냈고 위나라, 노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공자 사후에 장례를 주재했으며 혼자 6년 상을 치르며 공자가 <논어>를 통해 부활하는데 기여했다. 이때 <논어> 2편에서 18편까지의 초안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자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때 강력히 부인하였고, 스스로 안회보다 못하다고 인정하였다. 겸손과 중용의 덕을 갖췄으며 아첨하지 않고도 기쁘게, 원칙을 지키면서 출세한 인물이다.

공자의 칭찬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자로가 <논어>의 최다출연자이지만 조연이라면 자공은 두 번째 출연자이지만 주연이다.

<공자가어>에서는 최다 등장인물이다. 공자 교단의 재정지원자였고 유상(儒商)의 원조이다. 공자의 유랑 제자 중 공자의 임종을 지킨 유일한 제자이다.

공문십철의 세 번째 과목인 정사는 염유와 계로 2명이다. 염유(冉有 BC 522 – ?)는 이름이 염구(冉求)이고 자는 자유(子有)이다. 염자(冉子)로도 불리며 노나라 출신이다. 염백우와 염옹의 이복동생이다.

정치, 행정, 군사 등 다방면에 재능이 뛰어났으며 제나라 침입을 격퇴하여 공자의 귀환 요청 사유가 되었다. 낙천적 성격에 자로와 반대로 부드러운 화술을 가진 유능한 행정가이며 장군이었다.

공자는 계씨의 가신이 된 그가 계씨의 횡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파문하였으나 의절하지는 않았다. 공자의 소개로 계씨 가신이 되었지만, 공자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계씨의 정책을 더 추종했다.

계로(季路, BC542-480, 62세 사망)는 이름이 중유(仲由)이며 노나라 변(卞)땅 사람이다. 자는 자로(子路) 또는 계로(季路)이다. 계씨의 가재를 지냈으며 공자보다 9세 연하로 제자 중 최연장자였다. 공자의 친구 같은 제자로 꾸중을 가장 많이 들었으며 또한 공자의 사랑과 관심도 가장 많이 받았다.

가장 온화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으며, 쌀 포대를 지고 백리 길을 달려와 부모를 봉양한 자로부미(子路負米)의 효자로 유명하다. 매우 솔직하고 용기 있는 인물로 탁월한 무인이며 뛰어난 정치가였다.

공자가 노나라에 돌아올 때 위나라에 남아 있다가 괴외(위령공 맏아들, 장공)의 난 때 주군 공회를 구하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가신의 표상이 되었다.  “군자사(君子死) 관불면(冠不免)” ”군자는 죽더라도 갓끈을 풀지 않는다.” 는 말을 남긴 유교의 순교자로 시체는 젓갈로 담가졌다.

공자가 비읍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공산불뉴에게 가려고 하자 반대했으며, 위령공의 부인 남자와의 만남도 비판했다. 약속을 내일로 미루는 일이 없었으며 단점을 지적하면 기뻐했다.
 
공문십철 중 네 번째 과목 문학은 자유(子游), 자하(子夏) 2명이다. 자유(子游, BC 506 - ?)는 이름이 언언(言偃)이고 노나라 오군(吳郡) 사람으로 자유(子游)는 자(字)이다.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예악(禮樂) 정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20여 살에 노나라 무성(武城)읍의 읍재가 되었다. 읍재(邑宰)는 한 읍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들이 담당한 벼슬 중 가장 낮은 벼슬이다. 공자가 무성에 방문했을 때 읍민에게 예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언언은 최초의 대중교육자라고 할 수 있다.

자하(子夏, BC 507 ~?)는 이름이 복상(卜商)이고 위나라사람으로 자하(子夏)는 자字)이다. 이다. 공자의 후기제자에 속하며 특히 문학에 재능이 있었다. <시경>에 조예가 깊었으며, 주역을 주석 및 해설한 <자하역전子夏易傳>이 전한다.

거나라에서 재상을 지냈으며 위(魏)나라 서하 학파를 창설하여 유학의 전승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논어> ‘자로편 17장’에 보면 자하가 거보(莒父)의 재가 되었을 때 공자가 당부한 말이 나온다.

자왈(子曰) “무욕속(無欲速) 무견소리(無見小利) 욕속즉부달(欲速則不達) 견소리즉대사불성(見小利則大事不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빨리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마라. 빨리하려고 하면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려 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자하는 순자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위(魏)나라 초대군주 문후의 스승이 되었다.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와 이사는 순자의 제자이다. 오자병법의 저자 오기의 스승인데 오기는 증자 아들 증신의 제자이기도 하다. 복상의 제자 중 왕후(王侯)의 스승이 4명이나 나왔다.

공자가 평하기를 자장은 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아들이 죽자 너무 슬피 울어 실명한 뒤 그 후유증으로 죽었다고 전한다.

<한무고사(漢武故事)>에 의하면 중국 진(晉)나라 때 소소(蘇韶)라는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저승에 가보니, 복상(卜商)이 안연(顔淵)과 함께 귀신 중에 성자(聖者)로 대접을 받으며 문(文)을 담당하는 수문랑(修文郞)으로 있었다고 한다. 복상은 1백 살이 넘어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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