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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백비(白碑) 앞에 서서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백비(白碑) 앞에 서서

  • 기자명 장원섭
  • 입력 2022.06.20 00:00
  • 수정 2022.06.2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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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국제교류원장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국제교류원장

[뉴스더원]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금호리 호사마을의 야트막한 능선 소나무 숲속에는 낯선 비석이 서 있는 무덤 한 기가 있다. 호패처럼 생긴 비석 어디에도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아서 찾는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바로 조선 명종 때 청백리로 유명한 박수량(朴守良)이다. 1513년(중종 8)에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나주목사, 좌찬성, 경기도관찰사, 호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고 지중추부사 재임 중에 병을 얻어 6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공직생활 38년 동안 가는 곳마다 많은 치적을 쌓아 백성으로부터 훌륭한 목민관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두어 칸 집 한 채 없이 평생을 살았고, 죽은 뒤에도 남은 양식이 없어 가족들이 장례조차 치를 수 없었을 정도였다.

명종이 그 사실을 보고받고 슬퍼하면서 ‘그의 청백한 이름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지 오래다’ 하고 장례를 후하게 치를 것을 지시했다. 또, 서해의 돌을 골라 비석을 만들되, 비석에는 한 글자도 쓰지 말라고 했다.

다만, 그의 맑은 덕을 기리는 의미에서 ‘백비(白碑)’라고 부르도록 하였다. (명종실록 1554년 1월 19일 조) 오늘날 사람들이 이 비석을 일러 ‘백비’라 부르게 된 유래다.

연산군 때 사간(司諫)이었던 정붕(鄭鵬)은 왕의 미움을 받아 영덕으로 귀양 갔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그의 인품을 높이 사 다시 관직에 등용하려고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의정 성희안(成希顔)이 그를 찾아 왕의 뜻을 전하며 간곡하게 권하자 마침내 이를 받아들여 청송부사에 임명되었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낸 죽마고우였다.

어느 날 성희안이 청송 땅에서 나는 잣과 꿀이 별미라는 말을 전해 듣고 정붕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으면서 청송의 특산물인 잣과 꿀을 좀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 후 정붕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잣나무(栢)는 높은 산봉우리에 있고 벌꿀(蜜)은 백성들의 벌통 속에 있는데, 부사로 있는 자가 어떻게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栢在高峰絶頂 蜜在民間蜂筒中 爲太守者 何由得之).”

예나 지금이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근간이 되는 공직사회의 청렴도는 그 시대 백성들의 삶의 질을 알려주는 척도라고 한다. 그래서 왕은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동원했다.

국가고시인 과거는 물론이요. 음서(蔭敍)까지 활용했다. 공직사회가 맑아야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지러워도 그나마 유지되었던 이유는, 우리 사회 곳곳에 이런 몇몇 청백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늘 그래왔듯이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뿌리부터 바뀐다. 물이 빠지면 저수지 바닥에 있던 돌이 그 본래 모습을 드러내듯이, 지난 정권의 면면은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상 밖으로 진상이 하나둘 밝혀지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지난 정부의 부정부패와 적폐 사례가 알려진 것만 해도 겹겹이 쌓여있다. 어제는 맞는다고 우겼는데 오늘 와서 보니 잘못된 것들이 한둘이 아닌 형국이다. 이렇게 불법과 적폐가 드러나는데도 제대로 수사해서 밝혀내지 않으면 오히려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늘어날 뿐이다.

공직사회의 청렴과 진정성이 의심받는 사회는 결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다. 공직사회의 부패는 그 뿌리가 깊고 구조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는 발본색원할 때까지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사정에 나서야 한다. 영구 퇴출과 같은 극약처방 없이는 비리를 뿌리째 뽑아낼 방법은 없다.

좀 더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규제를 없애고 권한을 분산하는 등의 획기적 대책도 나와야 하는 이유다.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구린내가 온 산천을 뒤덮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청렴한 선비정신을 가진 그때 그 인물들이 그리워진다.

‘우리 집안에 길이 전할 것은 오직 청백(淸白)이니, 대대로 서로 이어 끝없이 전하라(吾家長物惟淸白 世世相傳無限人).’

사회를 이끌어가는 공직자의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조선 세종 때 청백리 유관(柳寬)이 그의 자식들에게 남긴 이 유훈을 기억할 일이다.

오늘, 나그네는 여행지의 시골 작은마을 야트막한 능선 소나무 숲속에 외롭게 서 있는 백비 앞에 섰다.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청렴한 공직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청백리 박수량이 지녔던 목민관의 참뜻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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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ng-su, Kim 2022-06-27 08:59:23
우리 정치인들이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네요.
청백리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부정부패의 최일선에서 뉴스일면을 장식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