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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팔만대장경 복원 기원 강화도 선원사의 ‘만일 기도’ 마치다

고려 팔만대장경 복원 기원 강화도 선원사의 ‘만일 기도’ 마치다

  • 기자명 박평담 시민기자
  • 입력 2022.06.15 15:13
  • 수정 2022.06.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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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사, 16일 만일기도일에 맞춰 반야심경, 주기도문, 사도신경 자개경판 완성

강화 선원사 주지 성원스님이 16일 고려 팔만대장경 선원사 복원 '만일기도'를 마친다. (사진=선원사)
강화 선원사 주지 성원스님이 16일 고려 팔만대장경 선원사 복원 '만일기도'를 마친다. (사진=선원사)

[뉴스더원 인천=박평담 시민기자] 고려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인천 강화도 선원사(사적 제259호) 복원을 기원하는 대장정이 16일 만일(27년 4개월)째로 마무리된다. 

선원사는 '만일 기도일'에 맞춰 팔만대장경을 압축한 반야심경과 기독교들이 수시로 암송하는 주기도문, 사도신경을 새긴 3종류의 자개경판을 완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종교 화합의 뜻을 담은 '한문 및 한글 반야심경, 주기도문, 사도신경 봉안식'을 겸한 '선원사 복원 만일기도 회향식'이 이날 오전 10시 선원사 대웅전에서 열린다. 

이어 선원사 주지 성원 스님(61)은 9월 27일부터 한 달간 조선 초기 선원사에 있던 팔만대장경이 경남 합천 해인사로 옮겨간 경로를 따라 선원사~서울 용산~경기 이천 장호원~충북 충주 중앙탑~경북 문경, 점촌~낙동강~경북 구미~해인사 장경각까지 도보 행진을 한다.

티벳고원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수행자처럼 걸망을 메고 만일 기도 회향 만행 길을 떠나는 것이다. 

종교 초월한 고려 호국성지

강화 선원사 터 전경. (사진=선원사)
강화 선원사 터 전경. (사진=선원사)

강화도 전등사에 머물던 성원 스님은 1991년 어느 날 선원사 꿈을 꾸었다. 꿈에 나타난 고려시대 고승이 선원사 터 주변의 우물을 파 보라고 했고, 다음 날 기적처럼 우물 속에서 연꽃 맷돌을 발견했다. 녹찻 잎을 갈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맷돌은 현재 선원사에 고이 보관돼 있다. 

스님은 이 일을 계기로 1991년 3월 선원사 터 한구석에 있던 초가집으로 이사 와서 선원사 복원 '만일 기도'를 시작했다.

그는 조계종 선원사 주지로 임명된 이후 당시 강화도를 지역구로 둔 이경재 국회의원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국고 지원을 이끌었고, 수년간 동국대 박물관팀이 선원사 5차 발굴조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선원사 대웅전 1층의 역사박물관에는 동국대박물관 팀의 절터 발굴과정에서 출토한 기와 파편 등의 유물과 고려시대 선원사에 주석했던 역대 스님들의 영정, 발굴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잡목과 나무만 무성했던 야산에서 발굴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스님은 신도들과 함께 아담한 대웅전, 농가 형태의 요사체를 하나둘 지었다. 마당에선 목탁 치는 소리를 내는 소(우보살), 공작새, 오골계, 다람쥐 등을 키웠다. 

선원사 팔만대장경 이운식의 모습. (사진=선운사)
선원사 팔만대장경 이운식의 모습. (사진=선운사)

1999년 사찰 주변에 혈액순환에 도움되는 소금과 황토 성분의 찜질방을 만들어 무료 개방했다. 찜질방의 효능이 TV에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져 한때 '건강 명소'로 입소문이 자자했다.

선원사는 종교를 초월해 몽골 침입에 대항했던 호국정신을 기릴 수 있는 연꽃축제, 고려 팔만대장경 이운 재현 퍼포먼스, 연꽃 음식축제 등의 문화행사를 다양하게 선보였다. 절터에 대몽항쟁의 정신과 흔적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고려 왕조는 39년간 강화도에 머물면서 고려 왕궁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외성, 중성, 내성 등 삼중 성벽을 쌓았다. 현재 궁궐은 사라지고 고려궁지의 흔적과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몽골 항전을 이끈 고종 묘인 홍릉(사적 제224호) 등 고려 왕릉 4기와 팔만대장경 판각지인 선원사 터가 강화도에 있다. 남한에 있는 5기의 고려 왕릉 중 4기가 강화도에 몰려 있는 것이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려 팔만대장경은 몽골 침략을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해 1237∼1248년에 제작된 이후 선원사에 보관돼 오다 1398년 해인사로 옮겨졌다. 

연 건강식품 대중화한 실험장  

성원 스님은 연꽃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꿈에서 본 우물 속에서 건져낸 연꽃 맷돌이 스님과 한결같이 연결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는 먼저 연잎 녹차를 대중화했다. 향기 그윽한 연잎 차는 다도를 즐기는 스님들도 쉽게 마시지 못하는 귀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20여 전부터 선원사 앞 논지대를 연꽃밭으로 단장했다. 연꽃단지는 초기 5만㎡에서 최대 10만㎡로 늘어나면서 여름이면 장관을 이뤘다.

선원사에 핀 연꽃. (사진=선원사)
선원사에 핀 연꽃. (사진=선원사)

2003년부터 꽃을 감상하고 예술공연을 즐길 수 있는 세계 연꽃 음식축제를 열었다. 7월 말부터 꽃대마다 3일씩 연잎이 피고 지면서 20일 동안 꽃망울을 터뜨리니 연꽃밭을 따라 논길을 거닐어보려는 사람들이 꽤 몰려들었다.

 선원사는 김포대와 신라호텔 조리 연구가, 교수, 주방장 등과 함께 연근, 연잎을 이용한 음식을 개발해 시식하게 했다. 연꽃 단지에서 생산된 연으로 차, 가루, 쌀국수, 아이스크림, 피클 등 여러 가공식품을 만들었다. 연 다식, 연 메주, 연 부대찌개, 연근 궁중떡볶이, 연 춘천닭갈비, 연근 무생채, 연근 막걸리, 연 만두, 연 비누, 연 닭갈비, 연 메주도 선보였다. 

선원사 연꽃 음식. (사진=선원사)
선원사 연꽃 음식. (사진=선원사)

성원 스님은 "연을 재료로 한 김치는 발효 억제, 숙성 연장 등의 효과로 잘 무르지 않고 오랫동안 신선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당시 연을 쌀 대체작목으로 키우기 위해 선원면 일대를 연 향토사업단지로 지정했다. 

연에 빠져든 스님은 늦깎이 석·박사과정에 나서 논문을 통해 연 효능을 학술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심장 비대증세로 심장이식 수술이 필요한 심장병 장애 3급이었으나 연근, 연잎을 넣은 음식을 꾸준히 섭취한 덕분에 장애인 취소 판정을 받았다. KBS TV에 초청돼 이런 비화를 소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 '연 재배 현황과 이용 증대'라는 논문을 발표해 석사학위를 받고 연 정보를 총정리한 '좋은 연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2020년엔 양계장에서 폐기될 노화 닭에게 연 사료를 3개월간 먹여 건강을 되찾게 하는 임상실험을 토대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선원사 주지보다 '연 스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원 스님은 "선원사 존재를 처음 알려준 국민대 정만조 교수님 덕분으로 만일 기도를 무사히 마치게 됐다"며 "연과 함께한 뜻깊은 시간을 자개 명장과 서예가 도움을 받아 반야심경, 주기도문, 사도신경 자개경판으로 새겨 부처님께 봉안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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