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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무비] '브로커'는 왜 아쉬운 작품이 되었나

[이은선의 픽(pick)무비] '브로커'는 왜 아쉬운 작품이 되었나

  • 기자명 이은선
  • 입력 2022.06.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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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 “버릴 거면 낳지 말라고.” 어느 비 오는 밤, 베이비 박스 앞에 갓난아기를 두고 가는 소영(이지은)의 뒷모습을 잠복해서 지켜보던 형사 수진(배두나)이 말한다. <브로커>의 첫 대사이기도 하다.

영화는 낳았으나 육아를 할 수 없는, 혹은 포기한 사람들이 찾는 시설인 ‘베이비 박스’를 둘러싼 이야기다.

<브로커>는 지난 5월 28일 폐막한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한국 남자 배우 최초, 아시아 전체로 영역을 넓히면 네 번째로 송강호가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했지만 제작 및 투자 배급, 배우와 스태프까지 한국 자본과 인력이 뭉쳐 만든 한국영화다.

이 영화는 버려진 아이들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의 초기작 <아무도 모른다>(2004)와도 중요한 연관성을 지닌다.

<아무도 모른다>가 양육의 책임을 져버리고 부모가 떠난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바라본 작품이라면, <브로커>는 생명을 둘러싼 어른들의 세계다. 애초 제목이었던 <요람>에서 지금과 같이 바뀐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서 2년간 취재를 진행한 고레에다 감독은 다양한 이들의 입장을 취재하면서 변화한 생각들 때문에 지금과 같은 구성을 택했다고 밝혔다.

이야기는 한 교회의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소영이 다음날 다시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돈을 받고 소영의 아이를 새 부모에게 넘기려던 브로커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는 난감해진다.

결국 돈을 나눠가지기로 합의한 셋은 아기의 새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뜻밖의 여정을 함께 한다. 베이비 박스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던 수진과 이형사(이주영)도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뒤를 밟는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 인물들은 조금씩 변화를 겪는다. 그간 별다른 죄책감 없이 거래를 이어왔던 것 같은 상현은 어느새 소영의 아기를 위한 최선의 입장을 고민한다. 그리고 결국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선택을 내린다.

버려진 아이였던 동수는 소영을 통해 엄마의 입장을 헤아린다. 소영은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아기의 탄생을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축복의 언어로 바꿔 돌아본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가 충분히 설득 가능한 과정 안에서 펼쳐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혈연 혹은 어떤 사연으로 뭉치게 된 가족의 일상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고레에다 감독의 장기다. <걸어도 걸어도>(2009),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 <어느 가족>(2018) 등의 작품이 대표적인 경우다.

인물들의 역사와 시간 그 자체를 담고 있는 집이라는 배경은 이 영화들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세계였다.  

<브로커>는 다르다. 집이 아닌 길 위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어떤 의미에서 인물들에게 집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있어도 크게 의미가 없는 공간이다.

상현은 세탁소를 운영하지만 그곳에서 생활의 온기는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베이비 박스의 관리자이자 상현과 함께 일하는 동수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아동 보호 시설에서 자랐다. 소영은 안착하는 대신 떠도는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수진과 이형사는 업무 특성상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게 더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얼렁뚱땅 시작된 여정 안에서 이들은 유사 가족, 혹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동체가 되어간다. 하지만 이 안에서는 고레에다 영화의 익숙하고도 분명한 장기들이 흐릿하게 감지된다. 길 위의 이야기에는 일상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함께 식사하는 식탁이나 부엌의 풍경, 익숙한 공간들에서 소박하게 나누는 대화들, 서로의 곁에서 몇 번의 계절과 상실 그리고 추억을 쌓아왔던 이들의 진심이 툭 튀어오는 순간 같은 것을 민첩하게 포착하기 어려워진다.

각 캐릭터의 입장을 충분히 설득하기에 영화가 제시하는 며칠간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절대적인 시간이 그렇다기보다는, 생명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둘러싸고 관객이 인물에 공감하며 동화되기에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는 결과적으로 형사들의 입장을 분주하게 만든다. 여러 인물들의 입장에 고루 이입하게 했던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브로커>는 처음부터 관객의 입장을 형사들의 위치에 둔 듯 보인다. 인물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변화될 법한 생각들을 갈무리하는 것은 수진과 이형사가 나눠지닌 대사의 몫으로 남는다.

아기를 구하기 전에 엄마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먼저 필요하지 않았는지를 이야기하고, 아기가 거래되길 바라는 자신들의 입장이 브로커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조적으로 깨닫는 과정. 이 안의 말들은 때로 관객의 사유보다 앞서나간다. 혹은 너무 직설적으로 제시된다.

“현실의 가혹함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이 가진 가능성, 어떤 종류의 선의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 영화의 선의란 ‘아이를 위해 무엇이 가장 최선인가’를 생각하며 행동한 결과다. 다만 그것은 법적으로 올바른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24시간 내내 선한 사람도, 반대로 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모순 역시 표현해 보고 싶었다.”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의도 자체는 충분히 납득 가능하지만, 때로 어떤 결과물은 의도 그대로 나오진 않는다.

영화가 생명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정확히 가로지르지 못하는 사이 개별 장면의 완성도는 배우들 각자의 역량으로 남는다. <브로커>의 수상이 작품 자체가 아닌, 송강호라는 배우 개인의 몫이 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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