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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의 픽(pick)무비] 기계를 통한 존재론적 사유 '애프터 양'

[이은선의 픽(pick)무비] 기계를 통한 존재론적 사유 '애프터 양'

  • 기자명 이은선
  • 입력 2022.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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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뉴스더원] 기억을 통한 사유가 인간만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기계와 인간을 가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전에 기계에 저장된 ‘메모리’를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할까. 그것 역시 인간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무엇은 아닐까.

<애프터 양>은 인간의 외양을 한 안드로이드 ‘테크노 사피엔스’가 다문화 가정의 보편적 일원으로 녹아든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제이크(콜린 파렐)와 키라(조디 터너 스미스) 부부는 입양한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를 위해 중국인으로 설정된 테크노 사피엔스 양(저스틴 H.민)을 구매해 함께 살아왔다. 미카가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양은 미카의 다정한 오빠, 제이크 부부의 속 깊은 아들로 오랜 세월 함께 했다.  

어느 날 양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카의 양육을 양에게 전담하다시피 했던 부부는 당혹스럽다.

양을 정식 경로로 구매하지 않았던 탓에 여러 수리 업체를 전전하던 제이크는 그의 중심부에 숨겨진 기억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에게는 가족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오랜 세월과 기억이 존재한다.

<애프터 양>의 원작은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단편 ‘양과의 안녕(Saying Goodbye to Yang)’이다. 소설이 극 중 주인공과 로봇 수리자들 사이의 논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 것과 달리 영화는 화자에 제이크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가 양의 메모리를 들여다보며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보는 구성으로 확장했다.  

양이 거쳐 온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관객에게 일종의 명상과도 같은 경험을 안기는 것은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비주얼화 하는 코고나다 감독의 장기가 십분 발휘된 결과다. 코고나다는 테렌스 맬릭, 페데리코 펠리니 등 현존하는 시네아스트들의 작품 분석에 초점을 맞춘 필름 에세이 작업을 이어온 영상작가로 유명하다.

첫 장편 연출작 <콜럼버스>(2017)에서는 모더니즘 건축 양식의 메카인 미국의 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공간과 인물의 내면을 사색하는 듯한 인상적 연출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애플 TV+ 오리지널 <파친코>의 공동 연출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 속의 어떤 사건이 달라지고 더 가슴 아파지거나, 의미가 더해지거나, 변해가는 과정 또한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 코고나다 감독의 말이다.

제이크가 열어본 양의 기억은 인간의 유한성을 목격하는 과정이다. 결코 영원하지 않기에 더 진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그 안에 존재한다. 제이크는 그렇게 ‘온전히 인간이 아닌’ 존재의 기억을 통해 가장 인간다운 무언가를 목격한다.

이때 유한성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존재는 양이다. 인간은 ‘애벌레에겐 끝이지만 나비에겐 시작이다’라는 말에 매달려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희망을 말한다. 그런 인간들에게 양은 말한다. “그런 믿음은 제 프로그램에는 없어요. 저는 마지막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괜찮아요.”

감독은 제이크가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마치 드넓은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연출로 선보인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깊고 너른 우주다.  

양이 남긴 기억들은 일견 사소하다. 그를 거쳐 갔던 모든 가족들의 일상, 햇볕이 벽에 드리우는 그림자, 풀밭의 따스한 촉감, 애정을 느끼는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제이크는 양의 메모리에 저장된 가족의 순간을 통해 자신의 주관적 회상을 겹친다.

객관적으로 기록된 과거는 제이크가 떠올린 과거로 다시 한번 변주된다. 인간의 시공간을 기록함으로서 관객 각자의 사유를 재생산하는 영화의 기능과 닮았다는 점에서, <애프터 양>은 카메라 나아가 영상 매체의 의미를 폭넓게 가늠하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 혹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인간 남성인 제이크는 딸의 정서적 육아를 양에게 일임하면서도, 안드로이드와 같은 기계의 존재에 대해 은근한 거부감을 가진 인물이다.

양과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복제인간 에이다를 만났을 때 제이크는 “양이 인간이 되고 싶어했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때 에이다는 “모든 존재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인간 중심적 사고”라 지적한다.

이 지적은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둘러싼 윤리의 문제에서 보다 보편적인 인간 사회의 화두들로까지 나아간다. 기계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것을 향해 은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적대심은 다른 인종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아시아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양의 태도는 고국이라는 뿌리를 경험하지 못한 채 살아온 후대 이민자들의 고민에 겹친다. 제이크와 중국차(茶)에 대해 논하는 양의 기억은 실제 그의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된 것이기 때문이다. “차가 그냥 지식이 아니면 좋겠어요. 장소와 시간에 관한 진짜 기억이 있으면 해요.”

우리에게 실제로 찾아올지 모를 미래를 배경으로 존재론적 사유를 폭넓게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애프터 양>은 좋은 SF다. 기억과 상실, 가족과 개인의 정체성을 깊게 탐구하는 철학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가 선사할 수 있는 이 체험은 분명 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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