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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여행] 우리들의 영화로웠던 시절… 태백시 철암동 이야기

[스토리텔링 여행] 우리들의 영화로웠던 시절… 태백시 철암동 이야기

  • 기자명 임요희
  • 입력 202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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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철암역두 선탄시설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탄소도시에서 산소도시로 변신을 시도하다

태백시가 오는 14일부터 10월까지 철암역두 선탄시설을 둘러보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태백시가 오는 14일부터 10월까지 철암역두 선탄시설을 둘러보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뉴스더원 = 글 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석탄이 근대 산업화의 견인차였다는 것은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고 일반인에게는 그저 서민의 에너지일 뿐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연탄을 땠다. 

태백은 한국 석탄 생산량의 30%를 담당했다.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할 만큼 태백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액화천연가스, 석유, 원자력이 주류 에너지로 자리 잡으면서 국대 석탄 생산지 ‘태백’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철암역두 선탄시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시구가 있다. 언제 연탄재만큼 뜨거워 본 적이 있었냐는 시인의 물음에 할 말이 없어진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철암역구 선탄시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철암역구 선탄시설
여전히 연탄을 때는 가옥이 있다.
여전히 연탄을 때는 가옥이 있다.

한때 영화로웠던 도시를 방문한다는 것은 단순한 관광일 수 없다. 한 번도 뜨거웠던 적 없고 한 번도 화려한 삶을 살지 못한 나에게 태백 땅은 넘사벽의 장소였다.     

조금은 흥분 상태에서 태백시 철암동에 당도했다. 철암역 너머로 보이는 검은 산이 시선을 압도했다. 검은 돌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설마 저게 다 석탄일까?

검은 돌의 정체는 ‘경석’이었다. 굴을 뚫는 중에 나온 돌로 광업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경석을 일본말로 ‘보다’라고 부른다. 그동안 경석은 폐석 취급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시멘트 소성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경석이 산을 이룬 모습.
경석이 산을 이룬 모습.

경석이 쌓인 곳은 철암역두 선탄시설이다. 태백시 남부 철암동에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의 일부인 선탄장이 자리 잡고 있다. 선탄이란 석탄을 선별한다는 뜻으로 쓸모 있는 돌과 쓸모없는 돌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철암역두 선탄시설은 일제 강점기인 1935년에 건설되어 2022년 현재까지 가동되고 있다. 2002년에는 영구히 보존할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됐다. 철암역두란 철암역 앞이라는 뜻.

조선을 원료공급기지로 삼은 일제

‘산 너머 산’이라는 말도 있지만 태백은 첩첩산중에 꽁꽁 숨은 산골이었다. 일제는 한일병합과 함께 조선의 석탄 자원을 샅샅이 조사했고 일본인에게 광업권을 독점적으로 허가했다.

태백석탄박물관에 전시된 일제강점기 조선인 탄부들의 작업.
태백석탄박물관에 전시된 일제강점기 조선인 탄부들의 작업.

1933년 일본은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삼척개발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일제는 채탄장인 장성갱에서 선별장인 철암까지 운탄선로를 까는 한편 석탄을 반출하기 위해 철암에서 묵호항을 잇는 철도를 개설했다. 

해방 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끊었다. 그때만 해도 한반도 석탄의 80%가 북한에서 생산되었으므로 남한 정부는 곤란에 빠졌다. 

철암에서 영월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수송하기 위한 작전이 펼쳐졌다.
철암에서 영월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수송하기 위한 작전이 펼쳐졌다.

정부로선 남한 최대의 석탄 생산지인 장성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화력발전소가 있는 영월까지 탄을 운반하는 일이었다. 

영월과 태백은 지척이었지만 철로가 없었다. 일제가 장성을 개발한 것은 어디까지나 수탈 목적이었기에 철암에서 묵호항으로 가는 철길만 깔았던 것이다. 

결국 정부는 장성에서 캐낸 석탄을 묵호항까지 운반한 후 미군 LST 선박을 이용해 인천으로 보내고, 인천에서는 철도로 영월까지 수송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웃픈 일이었다. 

삶을 잇기 위해 삶을 저당 잡힌 사람들

남한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대한석탄공사를 설립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도록 한국에서는 연탄이 주요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가 태백의 호황기였다.

태백석탄박물관에 전시된 광부들의 식사 시간.
태백석탄박물관에 전시된 광부들의 식사 시간.
대한석탄공사의 안전모.
대한석탄공사의 안전모.

장성광업소의 지하갱도의 총길이는 327㎞에 달한다.(서울 서초와 부산 금정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의 길이는 416.1km)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으로 잇는 거리다. 여기서 채굴한 석탄의 양이 640만 톤이 넘는다. 

연탄은 풀빵 굽듯 탄광에서 바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매우 복잡한 공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된다. 우선 지하에 숨어 있는 석탄을 채굴하려면 갱도를 뚫어야 한다. 

보통 화약을 터트려 뚫는데 부서진 암석을 치우고, 갱도의 지주목(동발)을 설치하는 일과 운반을 위한 철로를 까는 일이 동시에 진행된다. 공기 속 석탄 가루는 광부의 폐포에 차곡차곡 쌓이고, 갱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삶을 잇기 위해 삶을 저당 잡히는 아이러니.    

채탄장을 ‘막장’이라고 한다. 사전적으로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는 뜻이지만 인생 막바지에서 선택하는 일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그만큼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 탄을 캐내는 일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철암역에 선탄시설이 자리 잡으면서 철암역 앞은 술집, 찻집. 고깃집, 옷집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성장했다. 인구 증가와 함께 1981년 삼척군의 장성읍과 황지읍 두 지역이 태백시로 승격되었다. 

장성광업소 사원아파트 기록사진. 장성동 태백파출소 앞에 있었으나 현재 해체되었다.
장성광업소 사원아파트 기록사진. 장성동 태백파출소 앞에 있었으나 현재 해체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연탄을 대체할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들이 개발되면서 석탄산업은 길을 잃고 말았다. 1989년에는 석탄산업합리화라는 미명 아래 탄광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정부가 광산을 폐기하는 과정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탄광촌은 몰락했다. 

1989년부터 1996년까지 태백의 43개 광업소가 폐광하였다. 1989년 4,421명에 달했던 장성광업소 직원은 현재 500명도 되지 않는다. 인구가 줄어든 만큼 태백시 16개 동도 8개 동으로 통폐합되었다.

철암역두 선탄시설을 개방하다

최근 태백시는 에너지 중심의 ‘탄소도시’에서 친환경 지향의 ‘산소도시’로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한강 발원지 검룡소.
한강 발원지 검룡소.
철암역 건너편 까치발 가옥.
철암역 건너편 까치발 가옥.
철암역두 선탄시설 내 백산갱구 입구.
철암역두 선탄시설 내 백산갱구 입구.
백산갱구 내부.
백산갱구 내부.

북한에 백두산이 있다면 남한에는 태백산이 있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추이자 대한민국 국토의 모산이다. 《삼국유사》도 환웅이 환인의 허락을 받아 강림한 곳을 태백산으로 적고 있다. 태백산에는 한강 발원지 ‘검룡소’와,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도 있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태백을 찾을 이유가 충분하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생겼다. 태백시가 오는 14일부터 10월까지 철암역두 선탄시설을 둘러보는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탐방 코스는 작업화·안전모 보관소, 장화 세척장, 방한갱도, 백산갱구, 연탄공장, 선탄장 가는 길, 선탄장, 역두 선탄장 순으로 이어지며 문화해설사가 동반한다. 

가슴 속까지 데워주던 ‘물닭갈비’

철암을 찾았다면 광부들이 즐겨 먹던 물닭갈비 맛을 볼 일이다. 춘천 닭갈비가 갖은 야채와 떡 고구마를 곁들여 매콤하게 볶아 먹는 요리라면, 태백의 물닭갈비는 철판에 갖은 야채와 닭갈비를 넣고 육수를 부어 전골처럼 보글보글 끓여 먹는 게 특징이다. 

태백의 로컬 음식 '물닭갈비'.
태백의 로컬 음식 '물닭갈비'.

태백의 차가운 날씨에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물닭갈비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광부들도 따뜻한 국물로써 목에 걸린 석탄 가루를 씻어내렸을 것이다. 같은 재료라도 기후에 따라 도시 특성에 따라 요리 방식이 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철암역 앞 장터가 정비되어 쇠바우골 탄광문화장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곳 ‘불로닭’에서는 물닭갈비(9,000원) 외에 석쇠닭갈비(12,000원)를 취급한다. 우열을 견주기 어려울 정도로 둘 다 훌륭하다. 새로운 맛의 세계를 꼭 경험해보시라. 


■ 철암역두 선탄시설 탐방 안내

*운영 기간: 5월 14일 ~ 10월 31일
*운영시간: 토·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4시
*운영 횟수: 하루 4회
*인원: 1회 20명  
*예약: 태백관광 홈페이지(tour.taebaek.go.kr) 
       전화(033-550-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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