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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백수들의 놀이터, 국회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백수들의 놀이터, 국회

  • 기자명 장원섭
  • 입력 202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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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뉴스더원] 우리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라는 말이 있다. 원수는 공교롭게도 피하기 어려운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적어도 2년이나 늦어도 4, 5년이 지나면 다시 만나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는 없다. 고심 끝에 지역구를 바꾸어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해도 그곳에서 또 다른 상대와 원수가 된다.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정치를 하는 동안은 이런 피할 수 없는 과정을 반복한다.

병법서 『손자(孫子)』의 ‘구지편(九地篇)’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오래전부터 사이가 나쁜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배를 같이 타고 강을 건넌다고 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강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고 한다면 그들은 살아남으려고 평소의 적개심을 접고 서로 왼손과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를 끄는 말들을 서로 붙들어 매고 차바퀴를 땅에 묻고 적에 대항하려고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죽을 각오로 똘똘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이해 때문에 뭉치는 경우를 비유한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사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원수 사이라도 한배에 타고 있는 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서로 운명을 같이하고 협력하게 된다는 뜻이다. 살아남는 것이 때로는 어쭙잖은 고리타분한 명분보다 더 낫다. 후일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안팎으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당파를 초월하여 국난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댈 생각은 아예 없어 보인다. 오히려 선거가 끝나니 온통 원수만 남았다. ‘원수는 순(順)으로 풀라’라는 말이 있다. 원한 관계는 관용으로 풀어야 후환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유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서민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그 직격탄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거기에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계속하고 있어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검수완박’을 둘러싸고 극한으로 치닫던 정치권이 이번에는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에 전격 합의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기존 6대 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에서 경제·부패 수사만 남기고 박탈하되,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면 완전히 폐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재안은 교묘하게도 핵심은 건드리지도 않았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던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은 감옥 갈 수 있다.”라는 선거 범죄 수사나 공직자 범죄 수사가 홀랑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찰 수뇌부가 이에 반발하여 줄줄이 사의를 표하고 나섰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는 “여야가 야합해 정치권에 불리한 대목을 들어내고, 국민이 보기에 민망스러워 방위사업과 대형참사까지 뺀 ‘검수야합’”이라고 혹평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더 이상 검찰 개혁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고, 앞으로는 민생과 국민을 위한 국회가 돼서 다시 신뢰받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라고 했다. 말은 번지르르하고 그럴듯하다. 수십 년 정치를 한 사람들이 국민 앞에서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어떻게 천연덕스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민생을 팽개친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음을 자백하는 걸 보면 저들도 뭘 알면서 저런 짓을 하는 게 틀림없다. 입에 올리기조차도 부끄러운 수준 낮은 말과 행동거지로 하릴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국민의 눈에 비치는 국회는 백수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정치하는 자들은 자기 패거리의 이익을 먼저 걱정하고 챙겼다. 그러나 백성들은 언제나 나라의 장래를 걱정할 뿐이었다. 위정자들이 나라를 망쳐놓은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백성들은 죽을 각오로 똘똘 뭉쳐 나라를 구해냈다.

그렇게 피 흘려 가며 겨우 나라를 구해놓으면, 그때마다 정치하는 자들은 뒤처리한답시고 또 다른 정치 논리를 앞세워 저들의 이익을 챙기곤 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악순환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요즈음 나라 경제는 바닥이고 국민은 시름에 잠겨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물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임에랴. 이런 시국에는 정치지도자들이 마땅히 솔선하여 국론을 모으는 데 앞장서야 한다.

우선은 난국을 타개하고 보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서로 힘을 합쳐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좀 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후안무치한 자들의 얼굴을 계속 보기를 원하는가? 이번에는 바꾸어야 한다. 두 번 다시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다가오는 선거에서 단단히 버릇을 고쳐야 한다. 국회가 쓸모없는 백수들의 놀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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