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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백성에게 지은 죄(罪)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백성에게 지은 죄(罪)

  • 기자명 장원섭
  • 입력 202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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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초빙교수

[뉴스더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어느 날 ‘맥구(麥丘)’라고 하는 작은 마을로 사냥을 나갔다가 한 노인을 만났다. 환공은 노인의 풍모가 참으로 그럴듯하고 지혜로워 보여 수레를 멈추게 했다.

환공이 노인에게 나이를 물으니 여든세 살이라고 했다. 감탄한 환공은 “수복(壽福)을 타고난 노인이구려. 그대의 장수(長壽)한 복으로 과인을 축원해 주면 고맙겠소.”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기도를 시작했다.

“왕을 축원합니다. 오래오래 장수하소서. 돈과 옥을 천한 것으로 보시고, 부디 사람을 귀하게 여기소서.”

“참 좋은 말씀이시오. 한 말씀 더 해 주시지요.” 노인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왕을 축원합니다. 왕께서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하소서. 간언하는 자를 항상 곁에 있게 하는 현명한 분이 되게 하소서.” 왕은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노인에게 부탁했다.

“옳은 말씀이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은 법이지요. 한 말씀만 더 해 주시구려.” 노인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왕을 축원합니다. 왕께서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않는 분이 되게 하소서.” 그러자 흐뭇해하던 환공이 이 말에 기분이 상해 안색을 바꾸었다.

“과인은 자식이 아비한테 죄짓고 신하가 군주에게 죄짓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가 아랫사람한테 죄짓는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오.” 그러자, 노인도 정색하고 말했다.

“행실이 바른 자식이 아비한테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대개 친척 때문이니 오해가 풀리면 아비가 자식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바른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주위의 그릇된 신하들 때문이므로 오해가 풀리면 군주는 역시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걸왕(傑王)이 탕왕(湯王)에게 망하고 주왕(紂王)이 무왕(武王)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왕이 신하와 백성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죄는 용서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사면되지 않았습니다.”

노인의 말을 듣고서야 환공은 깊이 깨닫는 바가 있었다. 환공은 최대한 공경한 자세로 노인에게 예를 표한 다음, 그를 맥구의 장(長)에 임명하여 다스리도록 하고 귀로에 올랐다.

여기에서 유래한 ‘맥구읍인(麥丘邑人)’이란 말은 곧은 성품과 슬기로운 지혜로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른길로 인도할 수 있는 어른을 가리키는 뜻으로 회자되고 있다. 전한(前漢) 말 유향(劉向)이 지은 『신서(新序)』 「잡사(雜事)」 편에 보인다.

새 정부 인수위가 구성되면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국민은 새 정부가 과거 승리한 자들처럼 전리품을 나눠 먹기 바빴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자신들이 약속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 정권은 그들처럼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국민의 뜻을 멋대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곧 물러갈 정부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구호를 호기롭게 외치며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출발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기울어지고 더 깊어진 골로 갈라졌음을 새겨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인의 말씀대로 군주가 신하와 백성에게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장자(莊子)는 천하에 군림하는 제왕이라 하더라도 결코 자기 마음대로 천하를 다 차지하고 제멋대로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알고 보면 자기 한 몸을 겨우 지탱할 뿐이라는 것이다. 천하를 잘 다스리는 비결은 제왕의 힘과 위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진 신하와 부지런하고 순박한 백성들이 잘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뱁새가 큰 숲속에 산다고 해서 그 숲 전체를 마음대로 가지는 것이 아니다, 겨우 나뭇가지 하나에 둥지를 만들어 잠시 의지하고 사는 데 불과하다. 두더지가 강가에 살면서 물을 마신다고 해도 그 강물을 전부 먹을 수는 없다. 겨우 자기 한 몸의 갈증을 잠시 해소할 정도에 불과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자기 임기 중에 손에 쥔 권력으로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다하려고 들면 국민이 고달파진다. 물러날 때가 되면 치적이나 성과보다는 원성이 저잣거리에 떠돌 뿐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은 그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자세를 낮추어 국민의 작은 소리라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첫 출발은 그 자리에 능력이 검증된 합당한 인물을 기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갈라진 국민을 통합시키는 정부를 구현하겠다던 구호들은 물러갈 그들이 했던 것처럼 결국에는 허울 좋은 무늬만 남을 것이다. 국민은 지금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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