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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여행] 무념이 치유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 가는 길

[스토리텔링 여행] 무념이 치유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 가는 길

  • 기자명 임요희
  • 입력 2021.10.30 00:00
  • 수정 2021.10.3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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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닮은 오대산 다섯 봉우리, 한국의 불교 성지로
자장율사가 걸었던 구도의 길 ‘선재길’
오대천 물길 따라 걷는 ‘월정사 전나무숲길’

월정사 전나무숲길에는 수령 500년 이상의 1700여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허공을 덮을 듯 빽빽하게 버티고 서 있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에는 수령 500년 이상의 1700여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허공을 덮을 듯 빽빽하게 버티고 서 있다.

[글·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시야가 좁은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현대 도시생활자에게는 멀리서 숲을 감상하기보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 나무를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오대산 월정사 가는 길에 유명한 전나무숲이 있다. 이곳 나무들은 보통 500살이 넘고 최연소 나무도 100살을 웃돈다. 그만큼 나무들 키가 크고 둥치가 굵다. 나무 한 그루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주말에는 강원도 오대산국립공원을 찾아 나무도 잊고 숲도 잊고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보자. 신경을 곤두세워 주위를 살필 일도, 신호등을 기다릴 일도 없는 그곳에 당신을 위한 작은 안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중국의 오대산을 본따 태백산맥의 한 산자락을 오대산이라 이름 짓고 월정사를 창건했다.
신라의 자장율사는 중국의 오대산을 본따 태백산맥의 한 산자락을 오대산이라 이름 짓고 월정사를 창건했다.

산 전체가 불교 성지 ‘오대산’

오대산국립공원은 강원도 평창군, 강릉시, 홍천군에 걸쳐 산자락을 넓게 펼쳐 두고 있다. 비로봉(1563m). 호령봉, 상왕봉, 동대산, 두로봉이 연꽃 형상으로 펼쳐진 이 산은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오대산이라는 명칭은 중국 산시성의 ‘오대산’에서 따왔다. 중국 오대산(3058m)은 중국 제일의 불교 성소로 수없이 많은 사찰이 산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 이는 고대 중국인이 오대산을 ‘화엄경’에 등장하는 ‘청량산’의 현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화엄경에는 인도 동북쪽에 청량산이 있어 일만보살을 거느린 문수보살이 거주한다고 되어있다. 중국인은 국토 동북쪽에 위치한 오대산을 자기 나라의 청량산으로 해석하고 불교의 본산으로 삼았다.

636년 불법을 전수받기 위해 당나라에 파견되었던 자장율사는 중국의 오대산을 본따 태백산맥의 한 산자락을 오대산이라 이름 짓고 월정사를 창건했다. 다섯 봉우리가 연꽃 모양을 이룬 것이며 한반도 동북쪽에 위치한 것이 중국 오대산의 축소판이었던 것. 

입을 벌리고 있는 ‘아금강역사’. 금강역사는 상의를 탈의한 모습으로 한 팔은 올리고 한 팔은 내린 것이 특징이다.
입을 벌리고 있는 ‘아금강역사’. 금강역사는 상의를 탈의한 모습으로 한 팔은 올리고 한 팔은 내린 것이 특징이다.
월정사 금강문루에 오르면 뜻밖의 화려한 모습과 만날 수 있다.
월정사 금강문루에 오르면 뜻밖의 화려한 모습과 만날 수 있다.

금강역사가 보초를 서는 ‘월정사 금강문’

오대산은 산 전체가 불교 성지나 마찬가지지만 동대산에 자리 잡은 월정사는 그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사찰이다. 한국 불교의 상징인 만큼 월정사를 거쳐 간 스님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한암, 탄허, 만화, 연암 등 국내에서 추앙받는 조계종 선승들이 월정사 출신이다. 현재는 정념스님이 주지를 맡고 있다.

전통적인 한국사찰의 가람배치는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의 순서를 따르지만, 월정사는 불이문 자리에 금강문을 두어 금강역사를 배치했다.

금강역사는 사찰을 지키는 수문신장으로 보통 문의 왼쪽에는 밀적금강,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을 세워둔다. 금강역사는 상의를 탈의한 모습으로 한 팔은 올리고 한 팔은 내린 것이 특징이다. 

밀적금강은 입을 벌리고 있는 ‘아금강역사’이고, 나라연금강은 입을 다물고 있어 ‘훔금강역사’이다.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 것이니 ‘시작’을 의미하고,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었으니 ‘끝’을 의미한다.

이는 천지만물의 시작과 끝, 생성과 소멸을 의미하지만, 부처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시작점이자 출구라는 뜻도 담고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 기단, 9층의 탑신, 금동장식의 상륜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 기단, 9층의 탑신, 금동장식의 상륜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석조보살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진다.
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석조보살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진다.

독립된 작품이면서 하나를 이루는 석탑과 석상

월정사 본당인 ‘적광전’ 앞뜰에 두 개의 문화재가 있다.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과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이 그것이다. 

팔각구층석탑은 연꽃무늬를 형상화한 두 층의 기단과, 9층의 탑신, 금동장식으로 치장한 상륜부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체 높이도 15.2m에 달해 국내 팔각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전해지지만 형식적으로 고려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10세기 무렵 건축되었거나 개축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탑신 안에는 부처의 사리가 모셔져 있으며 탑 앞에 놓인 석조보살 좌상은 탑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석조보살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진다. 이 두 석물은 제각각 독립된 예술품이면서 하나의 작품이기에 따로 떼어 평가할 수 없다.

다만 월정사 마당에 놓인 석조보살좌상은 복제품이다. 진품은 인근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총길이 9km의 선재길은 과거 스님들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갈 때 이용하던 통행로다.
총길이 9km의 선재길은 과거 스님들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갈 때 이용하던 통행로다.
선재길 구간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로드 중 하나다. Ⓒ한국관광공사
선재길 구간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로드 중 하나다. Ⓒ한국관광공사

자장율사가 걸었던 구도의 길 ‘선재길’

월정사에서 북쪽 상원사 방향으로 걷기 좋은 산책로가 이어진다. 총길이 9km의 이 산책로는 과거 스님들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갈 때 이용하던 통행로다.

박정희 정권 때 오대천 건너편에 신작로가 뚫리면서 ‘옛길’이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현재는 ‘선재길’로 불린다.

‘선재’는 ‘화엄경’에 등장하는 어린 구도자의 이름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인 선재동자는 속세를 떠나 진리의 세계인 법계를 찾아 길을 나섰다. 선재길은 선재동자의 구도를 본받아 선업의 길로 들어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재길은 평지라고 해도 될 만큼 경사가 완만해 노인이나 어린이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보통 3시간가량 소요되는데 걷다가 지치면 건너편 신작로에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선재길 구간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로드 중 하나다. 붉다 못해 형광색을 띠는 단풍이 오대천 물 위를 떠가는 풍경은 장관 중의 장관이다. 올해 단풍이 예년만 못하다고 해도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찾는 보람은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이 길은 아주 오래전 중국에서 문수보살을 현신한 자장율사가 상원사, 월정사 두 절을 창간하면서 걸었을 것이다. 자장율사가 닦아놓은 길을 1400년 넘게 스님들이 걸었으니 선재길은 실제로도 구도의 길이다.

선재길 진입로에 부도밭을 마련한 것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GettyImages
선재길 진입로에 부도밭을 마련한 것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GettyImages
소유보다는 덜어내는 연습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선재길 섶다리.
소유보다는 덜어내는 연습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선재길 섶다리.

풍요의 시대에는 덜어내는 연습을 

선재길 초입에 부도밭(문화재자료 제42호)이 자리 잡고 있다. 부도란 입적한 스님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월정사 부도군에는 총 22기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무덤을 산속 깊이 숨겨온 우리네 정서에서 볼 때 이런 부도군은 낯선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해외 많은 나라의 공동묘지가 공원화되어 있어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된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선재길 진입로에 부도밭을 마련한 것은 잠시 명상에 들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선재길은 짧은 길이 아니지만 지루할 틈이 없다. 색색의 고운 단풍, 싱그러운 숲내음, 청아한 물소리에 오대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통나무다리, 섶다리, 출렁다리까지 곳곳에 포토포인트가 자리 잡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조차도 잊고 무념무상의 시간을 가져 보길 권한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말은 스마트폰 회사가 퍼트린 유언비어에 지나지 않는다.

남기지 못하면 어떠랴. 풍요의 시대,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가졌다. 뭔가를 소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하나씩 덜어내는 연습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것이다.

왕의 옷을 걸었던 관대걸이 표지석. 세조가 옷을 벗고 몸을 씻으면서 동자승에게 등을 밀도록 했다고 한다.
왕의 옷을 걸었던 관대걸이 표지석. 세조가 옷을 벗고 몸을 씻으면서 동자승에게 등을 밀도록 했다고 한다.
상원사에 진입하려면 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상원사에 진입하려면 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월정사의 말사라기엔 너무나 다양한 유물과 스토리를 보유한 상원사.
월정사의 말사라기엔 너무나 다양한 유물과 스토리를 보유한 상원사.

왕의 등을 밀어준 문수보살

선재길이 끝나는 지점은 상원사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상원사 올라가는 입구에 ‘관대걸이’ 표지석이 있다. 세조가 관대를 벗어 걸었던 장소다. 관대걸이 표지석에 옷을 건 것이 아니고, 관대를 걸었던 자리를 표시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오대산 계곡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상원사로 행차했다고 한다. 세조가 옷을 벗고 몸을 씻는데 산길을 지나가던 동자승이 있어 등을 밀도록 했다.

세조는 동자승에게 “어디 가서 임금의 벗은 몸을 보았다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자 동자승이 “임금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세조가 놀라 돌아보니 동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문수보살은 ‘완전한 지혜를 가진’ 불교의 보살로 석가모니보다 훨씬 빨리 성불했지만 대중이 모두 성불할 때까지 부처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분이다.

문수보살을 만난 이후 세조는 씻은 듯 피부병이 나았고, 감복한 왕은 화공을 불러 동자의 모습을 그리도록 했다. 그 그림을 바탕으로 나무에 조각한 것이 ‘목조문수동자좌상’이다. 

세조가 지시하여 제작했다는 문수동자상. 법당 안으로 들어가 촬영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세조가 지시하여 제작했다는 문수동자상. 법당 안으로 들어가 촬영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세조는 불당 근처에 숨어 있던 자객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세조는 불당 근처에 숨어 있던 자객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문수전에 모셔진 동자상과 고양이 석상

상원사 문수전 내에 세조의 지시로 만들었다는 목조불상인 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이 있다. 해탈한 듯한 표정만 아니라면 양갈래로 묶은 머리, 자연스럽게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 도톰한 볼이 영락없이 어린아이다. 

그동안 문수동자상에 얽힌 이야기는 후대 사람들이 지어낸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1984년 7월 문수동자상 내에서 23점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조사해보니 불상의 제작 연도가 조선 세조 때로 밝혀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때 발견된 유물들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문수전 앞에는 기묘한 형상의 석상이 모셔져 있다. 작은 고양이 석상 두 개가 그것이다. 여기에도 하나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상원사에 묵게 된 세조가 아침 예불을 올리기 위해 불당에 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왕의 옷을 자꾸 잡아당겼다고 한다. 

이상한 생각이 든 세조는 병사들을 시켜 주변을 수색하도록 하였고, 불당 근처에 숨어 있던 자객들을 찾아냈다. 고양이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된 세조는 상원사에 500섬지기 논을 시주했다. 절에서는 왕이 시주한 논에 묘전(猫田)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고양이 석상을 만들어 이를 기념했다. 

종유 하나가 사라진 상원사 동종. 사진 속 종은 모형이다. 실물은 바로 옆 유리관 안에 있다.
종유 하나가 사라진 상원사 동종. 사진 속 종은 모형이다. 실물은 바로 옆 유리관 안에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

오대산 중대에 자리한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다. 말사(末寺)란 본사(本寺)에 예속된 절을 말한다. 본사의 말사라고 하기엔 상원사의 규모가 적지 않은 데다 유물의 질과 양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국보 제36호로 지정된 상원사 동종은 문수동자상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725년에 제작된 이 동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 연도에 있어 선덕왕 신종(에밀레종, 771년)보다 46년이나 앞선다. 

외형도 아름다워 두 명의 천인이 ‘공후’를 연주하며 하늘을 나는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런데 이 종을 가만히 보면 종의 상단부에 있는 종유(종의 젖꼭지)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종유 35개가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가운데 딱 하나만 사라진 이유는 뭘까.   

이와 관련해서도 하나의 전설이 전해져온다. 상원사에 많은 상을 내린 세조는 내친김에 범종도 하나 봉안하기로 마음먹고 신하를 시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을 찾아오도록 명을 내렸다. 세조는 종을 찾기도 전에 세상을 뜨고 아들인 예종이 안동도호부의 남문 누각에 있던 종을 찾아 상원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종이 조령을 넘을 때였다. 갑자기 종이 꼼짝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모두가 낭패에 빠진 상황에서 인부 하나가 묘안을 제시했다.

“아무래도 종이 안동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종유를 하나 떼서 종이 있던 곳으로 보내면 어떨까요?”

그의 말대로 하자 정말 종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무사히 상원사에 당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선재길-월정사-전나무숲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먹고 걸으면 하루 안에 다 걸을 수 있다.
선재길-월정사-전나무숲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먹고 걸으면 하루 안에 다 걸을 수 있다.
산기슭을 따라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구간이 있어 세족이 가능하다.
산기슭을 따라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구간이 있어 세족이 가능하다.

오대천 물길 따라 걷는 ‘월정사 전나무숲길’

상원사까지 올라가는 것이 벅차다면 월정사 남쪽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오대천을 따라 이어지는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내소사, 광양수목원과 함께 국내 3개 전나무숲길로 꼽힌다.

사실 선재길-월정사-전나무숲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마음먹고 걸으면 하루 안에 다 걸을 수 있다.

1km 정도 이어지는 월정사 전나무숲길에는 수령 500년 이상의 1,700여 그루가 하늘을 찌를 듯, 허공을 덮을 듯 빽빽하게 버티고 서 있다. 전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오대천이 쏟아내는 음이온, 황톳길이 제공하는 원적외선은 도시 생활에 찌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주고도 남는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산기슭을 따라 시냇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구간이 있다. 특별히 세족을 허락하는 곳이다. 양말을 벗고 시원한 물에 두 발을 맡겨보자. 가슴 속 응어리까지 깔끔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책로 주변에 조성된 조각공원.
산책로 주변에 조성된 조각공원.
600년의 시간을 살고 병들어 쓰러진 전나무.
600년의 시간을 살고 병들어 쓰러진 전나무.
성황당 지나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가 있다.
성황당 지나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가 있다.

사람의 작품, 시간의 작품

산책로 주변으로 자그마한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최소한의 작업을 통해 나무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조각들이다. 언뜻 보면 조각품인지도 잘 인지가 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의자, 하트 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손을 거친 작품도 있지만 세월이 만든 조각품도 있다. 늙고 병들어 저절로 쓰러진 나무들. ‘할아버지 전나무’는 지난 2006년 1월 23일 밤, 600살을 일기로 세상과 이별했다. 이생의 삶은 마감했지만 죽어 예술작품이 되었으니 영원을 살아가는 셈이다. 

할아버지 전나무를 지나, 성황각을 지나면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가 나온다. 흰 눈이 소복히 쌓인 숲길에서 김신(공유)이 지은탁(김고은)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사계절 싱그러운 느낌을 주는 전나무 숲길이지만 한겨울 흰 눈이 푸르름을 덮으니 시베리아 한복판에 떨어진 듯 이국적인 느낌이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를 지나면 월정사 일주문이다.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라는 현판 글씨는 월정사 주지이자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을 역임한 탄허(呑虛, 1913~1983) 스님의 친필이다. 차를 월정사 주차장에 세웠다면 어차피 전나무숲길을 되짚어 와야 한다.

이때 오대천 해탈교를 가로질러 수변 산책로를 이용해보자. 전나무숲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가을을 만날 수 있다. 

흐르는 물길을 따라 색색의 고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수변 산책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색색의 고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수변 산책로.
수변 산책로는 전나무숲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수변 산책로는 전나무숲길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수변산책로

월정사 전나무숲길이 시간이 멈춘 곳이라면, 수변 산책로는 흐르는 물길을 따라 색색의 고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어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 전나무숲 탐방로만 걸어도 걸어도 1.9km를 걷는 셈이다. 

바쁜 현대인에게 저절로 사색의 시간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틈을 내어 숲을 방문한다면 메말랐던 영혼이 촉촉이 젖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일체중생의 번뇌에서 멀어진다면 당신도 길에서 문수보살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오대산 일원은 월정사 사유지로 문화재 입장료와 주차요금을 내야 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00원. 주차요금은 시간과 관계없이 대당 4000원이다.

장터 하면 국밥! ‘진부국밥’의 육개장은 얼큰하고 진한 국물 맛이 매력적이다.
장터 하면 국밥! ‘진부국밥’의 육개장은 얼큰하고 진한 국물 맛이 매력적이다.
즉석에서 바로 호떡을 구워주는 진부재래시장의 ‘평창호떡전문점’
즉석에서 바로 호떡을 구워주는 진부재래시장의 ‘평창호떡전문점’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탁자에 앉아 달달한 간식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노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탁자에 앉아 달달한 간식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노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얼큰한 육개장과 달달한 호떡의 위로

진부전통시장(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 140번지 일원)은 평창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재래시장이다. 3, 8일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오일장으로 후한 시골 인심, 다양한 먹거리와 만날 수 있다. 

오일장이 아니라도 식당은 상시 운영한다. 장터 하면 국밥! ‘진부국밥’의 육개장(8000원)은 얼큰하고 진한 국물 맛이 매력적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맛집도, 화려한 프랜차이즈 식당도 아니지만 소박하게 한 끼 즐기기에 제격이다.  

매운 육개장이 위에 자극적이었다면 달달한 디저트로 속을 달랠 일이다. ‘평창호떡전문점’은 즉석에서 바로 구워주는 호떡(1,500원)과 옛날 방식으로 만든 팥빙수(3000원)가 별미인 맛집이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탁자에 앉아 달달한 간식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노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게 느껴진다. 진부재래시장의 운영시간은 AM 9:00 ~ PM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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