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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여행]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 자연공원 ‘북한산 정릉계곡’ 

[스토리텔링여행]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 자연공원 ‘북한산 정릉계곡’ 

  • 기자명 임요희
  • 입력 2021.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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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계곡을 따라 가는 보국문코스
무질서와 풍기문란의 대명사였던 정릉계곡
4년간 이어진 한 공무원의 처절한 사투 

울창한 수풀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북한산 정릉계곡’
울창한 수풀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북한산 정릉계곡’

[글·사진 임요희 여행작가] 북한산국립공원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도심 속 자연공원’이다. 도심 한복판 이토록 울창한 숲이 존재한다는 것은 서울시민의 복이라고 할 수 있다. 

76.922㎢에 달하는 드넓은 면적에 40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자리 잡은 만큼 북한산을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는 효자동에서 출발하는 북한산성 코스, 구기동에서 시작되는 사모바위 코스 등 총 13가지 코스를 추천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무더위도 식힐 겸 시원한 정릉계곡을 끼고 오르는 ‘보국문코스’를 선택해 트래킹을 즐겨 보자. 정릉계곡과 청수장에 얽힌 스토리를 알고 출발한다면 더더욱 즐거운 산행이 될 것이다.

‘보국문코스’의 출발지 북한산보국문역 

 북한산 이미지로 래핑된 우이신설선 열차 안
북한산 이미지로 래핑된 우이신설선 열차 안
북한산보국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정릉천으로 이어진다.
북한산보국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정릉천으로 이어진다.

서울경전철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에서 북한산 보국문까지는 약 3km 거리로, 왕복 3시간가량 소요된다. 반나절 등산으로 제격인 셈이다. 

우이신설선은 북한산 등산객이 많이 이용하는 만큼 열차 내부를 북한산 이미지로 도배했다. 이 전철을 타는 것만으로 이미 등산은 시작된 것이다. 

‘북한산보국문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널찍한 정릉천이 반가이 길손을 맞이한다. 정릉천은 북한산 물줄기가 굽이굽이 흘러내려 형성한 개천이다. 

이토록 맑은 정릉천이지만 과거에는 정릉계곡의 불법 시설물들이 흘려보낸 오수로 시궁창과 다름없었다. 정릉천과 정릉계곡이 버들치가 노니는 깨끗한 개천, 계곡으로 변모하기까지 한 공무원의 처절한 투쟁의 역사가 잠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정릉계곡에 들어선 일본인의 별장

‘청수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청수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북한산국립공원 표지석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흘러들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표지석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흘러들고 있다.

천변 물길을 따라 10분가량 이동하면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에 닿게 된다. 이 일대를 ‘청수장’이라고 하는데 이곳이 이런 별난 이름을 갖게 된 데는 까닭이 있다. 

과거 이 일대는 맑은 물이 흐르는 동네라 하여 청수동(淸水洞)이라 불렸다. 지리산에 청학동이 있었듯 북한산에는 청수동이 있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정릉계곡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한 일본인이 물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는 별장으로 사용했다. 청수동에 들어선 최초의 신식 건축물이었던 셈이다. 이 별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정릉4동에는 산장빌라, 산장아파트, 산장미용실, 산장슈퍼 같은 이름의 건물이 많은데 이것만 봐도 당시 산장의 위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청수장을 기억하는 방식

청수장은 사라졌지만 곳곳에 다양한 흔적을 남겨두었다.
청수장은 사라졌지만 곳곳에 다양한 흔적을 남겨두었다.
정릉동에 남아 있는 ‘산장’의 흔적들.
정릉동에 남아 있는 ‘산장’의 흔적들.

한국전쟁이 막을 내린 후 일본인 별장은 철거되고 같은 자리에 ‘청수장’이라는 이름의 요정이 들어서게 되었다. 청수장은 1950년대 말 큰 화제를 모았던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의 무대로 큰 유명세를 치룬 곳이다. 그만큼 정릉계곡은 경치가 좋고 인적이 드물어 정부 요직 관리나 연인들의 밀회 장소로 사랑 받았다.  

1970년대 들어 도시가 팽창하면서 정릉계곡이 유원지화되기 시작했다. 요정이 발붙일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결국 요정은 페업을 단행하고, 새로운 주인이 인수하여 ‘청수장 레스토랑·여관’으로 재개장하였다. 영업장의 성격은 변했지만 청수장(청수동 산장)이라는 이름은 맥을 이어나간 것이다. 

청수장 레스토랑·여관은 빠른 시일 안에 정릉계곡의 명물로 자리 잡아갔다. 청수장이라는 이름이 지명으로 자리 잡은 것도 아마 이때쯤이 아닐까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행정상의 지명은 아니지만 정릉계곡의 랜드마크로서 ‘청수장’은 ‘산장’ 못지 않은 위상을 간직하고 있다. 정릉동에서 청수교회, 청수마트, 청수면옥 하는 식의 명칭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다. 

무질서의 대명사가 된 정릉계곡

매해 여름, 정릉계곡은 피서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청수폭포 입구에 전시된 사진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매해 여름, 정릉계곡은 피서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청수폭포 입구에 전시된 사진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당시 정릉계곡은 도심 속 휴양지로 큰 인기를 끌었다. 매해 여름이면 수많은 인파가 정릉계곡으로 몰려왔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는지 물속이건 바위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거기에다 수영장, 매점, 식당과 같은 무허가 건축물이 난립하여 정릉천에는 폐수, 오수가 흘러넘쳤다. 

정릉수영장에서 흘러나오는 독한 소독약으로 인해 북한산 계곡의 물고기는 자취를 감추었고, 상인들은 계곡마다 평상을 깔아놓고 턱없이 비싼 자릿세, 음식값을 요구했다. 

여기저기 난립한 비닐천막은 공중까지 어지럽혔으며, 음식점에서 내다 버린 오물과 쓰레기로 북한산은 점점 병들어갔다. 국립공원이라는 게 무색하리만큼 정릉계곡은 무질서, 혼돈, 풍기문란의 대명사가 되어갔다.

1994년부터 시작된 정릉계곡 정화작업 

최봉석 소장은 정릉계곡을 뒤덮은 매점과 식당, 수영장을 철거하는 일에 들어갔다. 산책로에 전시된 사진 자료.
최봉석 소장은 정릉계곡을 뒤덮은 매점과 식당, 수영장을 철거하는 일에 들어갔다. 산책로에 전시된 사진 자료.
마지막까지 버티다 철수한 가든풀장. 산책로에 전시된 사진 자료.
마지막까지 버티다 철수한 가든풀장. 산책로에 전시된 사진 자료.

북한산이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봄, 최봉석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소장이 취임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서울의 산소통 북한산국립공원이 처절하게 망가져가는 모습에 절망하였다. 그리고 막중한 사명감으로 정릉계곡을 뒤덮은 매점과 식당, 수영장을 철거하는 일에 들어갔다. 최근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의 계곡들을 정화하는 작업을 실시하였는데 환경정화에 있어 정릉계곡이 원조인 셈이다.

정릉계곡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상인들에게 철거 고지는 청천벽력과 다름없었다. 임대료 한 푼 안 내고 거저 먹고 살던 그들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밥줄이 끊기게 되자 웃통까지 벗어젖히고 드러누워 저항을 했다. 심지어 최 소장은 살해 협박도 받았다고 한다.

시멘트옹벽을 철수하고 자연석을 쌓다

시멘트옹벽을 헐어낸 자리에 자연석을 쌓아 조성한 청수폭포
시멘트옹벽을 헐어낸 자리에 자연석을 쌓아 조성한 청수폭포

상인들과의 분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 현 청수폭포 부근이다. 당시 상인들은 시멘트로 옹벽을 만들어 웅덩이를 조성한 후 물가에 평상을 들여놓고 음식을 팔았는데 최 소장은 그들을 몰아내면서 시멘트옹벽까지 철거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자연석을 쌓아 새로이 폭포를 조성했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인공폭포가 지금의 청수폭포이다. 지금 청수폭포 앞에는 정릉계곡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게 해준다.

최 소장과 사무소 직원들이 온몸으로 부딪힌 결과 정릉계곡에서 14개소의 음식점을 포함해 평상, 좌대 등 4,800여 개의 불법 시설물이 철거되었으며, ‘스타풀장’ ‘가든풀장’ 두 개의 수영장이 철수했다. 정리된 곳은 울타리를 쳐서 상인은 물론 탐방객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북한산 사무소 직원들은 밤샘을 밥 먹듯 하며 단속과 순찰을 이어갔다.
 
북한산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준 한 공무원의 뚝심

깡통집을 철거하는 것으로 도봉산도 정화되었다.
깡통집을 철거하는 것으로 도봉산도 정화되었다.

정릉계곡을 깔끔하게 정리한 최 소장은 도봉산 주봉(675m)의 깡통집을 철거하는 일에 착수했다. 깡통집 운영자는 도봉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거세게 저항했는데 이곳에서 라면과 커피를 팔아주던 사람들까지 추억의 깡통집이 사라지는 것에 반대했다. 한 유력한 산악단체는 깡통집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윗선에 압력을 넣었다. 그 바람에 북한산 사무소는 큰 애를 먹어야 했다. 

하지만 최 소장의 결단으로 깡통집은 철거되었고 깡통 80마대, 소주병 80마대를 수거하는 것으로 도봉산까지 완전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최 소장은 국립공원 여기저기 난립했던 기도터를 철거하는 일에 들어갔다. 수많은 무당들의 저주를 뒤로 하고 북한산 사무소 팀은 일을 강행했고 마침내 모든 것이 정리되면서 북한산 정화 프로젝트는 끝을 맺었다. 장장 4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지 아니한가

정릉계곡은 안내 부스부터 친환경적이다.
정릉계곡은 안내 부스부터 친환경적이다.
정릉계곡 보호를 위해 일부 구간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정릉계곡 보호를 위해 일부 구간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서의 위상을 찾으면서 ‘청수장’의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청수장은 2000년에 개축에 들어가 현재의 북한산 탐방안내소로 거듭 태어났다. 일본인 소유의 별장에서, 시민 소유의 힐링코스로 변모한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 정릉계곡은 청정하고 평온하다. 정릉계곡 호젓한 산책로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탐방객만 무심히 오간다. 계곡을 새까맣게 메우던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완전히 멸종된 줄 알았던 버들치도 돌아왔다.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계곡물은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는 게 옳다. 북한산탐방안내소는 청수폭포 일대, 넓적바위 구간 일대를 ‘국립공원특별보호구’로 지정, 2026년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초보 등산러에게 사랑받는 보국문코스 

보국문은 북한산성 14개 문 중 하나로 숙종 때 건립되었다.
보국문은 북한산성 14개 문 중 하나로 숙종 때 건립되었다.

‘보국문코스’는 비교적 쉬운 등산로라 초보자에게도 큰 부담이 없지만 그 안에서도 자기 체력에 맞는 루트를 선택해야 한다. 정릉 탐방지원센터에서 북한산 보국문까지 똑바로 이어지는 직진 루트의 경우 넓적바위를 지나 끝없이 계단이 이어지는 ‘깔딱고개’를 넘어야 한다. 무릎이 안 좋은 등산러에게 깔딱고개는 큰 부담일 수 있다. 

이럴 때는 영취사 쪽으로 에둘러 올라가다가 일선사 삼거리 – 대성문 - 보국문으로 이어지는 우회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이 길 역시 만만치 않은 숫자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자리 잡고 있어 쉬엄쉬엄 구경하며 오르기 좋다.

영취사, 일선사를 거쳐 보국문으로

고려말 조선초 건축물로 추청되는 영취사 오층석탑
고려말 조선초 건축물로 추청되는 영취사 오층석탑

기도 도량인 ‘영취사’는 오층석탑으로 유명하다. 안내문에 의하면 고려말 조선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북한산 보현봉 아래에 자리 잡은 ‘일선사’는 신라말인 9세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웅전, 약사전, 산신각,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고 바위에 새긴 칠성도와 산신도가 유명하다. 

최종 목적지인 ‘보국문’은 북한산성 14개 문 중 하나로 숙종 때 건립되었다. 북한산 고개를 넘는 백성들에게 허락된 성문으로 외형이 소박하다. 건립 당시 ‘동암문’으로 불리었는데 보국사 절과 이웃한 문이라는 뜻에서 ‘보국문’으로 개칭되었다. 

풍부한 육향의 생고기 돼지갈비

국내 유명 식도락가가 ‘국내 돼지갈비 중 최고’로 추어올린 바로 그 집
국내 유명 식도락가가 ‘국내 돼지갈비 중 최고’로 추어올린 바로 그 집

보국문역에서 정릉천을 따라 하산하다 보면 정릉시장에 닿게 된다. 정릉시장 부근 정릉역 못 미치는 위치에 돼지갈비 전문점 ‘청수장’이 있다. 청수장이라는 정겨운 이름에, 외관까지 근사한 한옥으로 되어 있어 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한번쯤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집이다. 

사실 이 집은 40년이 다 되어가는 전통의 맛집으로 수많은 단골을 거느리고 있다. ‘청수장’은 냉동고기를 양념해 숙성시켜 사용하는 일반 고깃집과 달리 생고기 돼지갈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굽기 직전 생고기에 양념을 바르기 때문에 냄새가 나거나 맛이 밍밍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오히려 돼지고기 특유의 육향이 살아있고 식감이 쫄깃해 고급스러운 맛으로 즐길 수 있다. 국내 유명 식도락가가 ‘국내 돼지갈비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 집은 돼지갈비 생고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생후 6개월 이내의 어린 돼지의 고기만 사용한다고 한다. 고기를 시키면 소스가 딸려 나오는데 기호에 따라 소스를 한 번 더 발라 구워 먹도록 되어 있다. 채소 등 각종 밑반찬은 셀프로 리필 가능해 더욱 더 풍족하게 즐길 수 있는 맛집이다. 청수 돼지갈비(250g) 1인분에 1만6,000원, 냉면은 1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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