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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여행] 허생원과 동이가 지났던 그 길, 봉평 메밀꽃밭

[스토리텔링 여행] 허생원과 동이가 지났던 그 길, 봉평 메밀꽃밭

  • 기자명 임요희
  • 입력 2021.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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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선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대화전통시장에서 맛보는 올챙이국수, 메밀전병
“장에서 장으로 가는 아름다운 강산이 그에게는 고향이었다”

ⓒGettyImages
ⓒGettyImages

[글‧사진=임요희 여행작가]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보기 위해 수목원, 식물원을 찾는다. 하지만 봉평 메밀꽃밭은 수목원도 아니고 식물원도 아니다. 그저 곡식이 자랄 뿐인 밭이다. 이 밭을 보기 위해 매해 여름, 관광객이 몰려온다. 

이름을 붙이자면 ‘이효석 현상’이 될 것이다. 이효석 선생은 당신이 나고 자란 봉평을 무대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고,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이 그것이다.

여름이 익어가면서 봉평 메밀꽃도 무르익어 가고 있다.
여름이 익어가면서 봉평 메밀꽃도 무르익어 가고 있다.

달밤에 세 사람이 길을 떠난다. 장터를 돌며 좌판을 벌이는 허생원, 그의 동업자 조선달 그리고 청년 동이가 그들이다. 세 사람은 봉평장터를 출발해 대화장터로 가는 길이다. 허생원은 봉평장터에서는 큰 재미를 못 보았다. 다음 날 열리는 대화장터에서는 돈을 좀 만질 수 있을까 싶어 달밤에 나귀를 앞세워 길을 나섰다.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라는 묘사처럼 강원도는 1930년대나 지금이나 콩, 옥수수, 메밀의 주산지다. 척박한 산간지대가 대부분이기에 강원도 사람들은 벌써부터 벼농사를 포기하고 산비탈에 콩이나 메밀같은 구황작물을 심었던 것.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인해 봉평은 핫플레이스가 됐다.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인해 봉평은 핫플레이스가 됐다.

봉평은 유독 메밀이 물결을 이룬다. 메밀은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잡초보다 빨리 성장하기에 따로 김을 매지 않아도 되며, 일 년에 두 차례 수확이 가능하다. 메밀은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찐빵, 메밀만두 등 다양한 음식으로 활용된다. 메밀껍데기는 베갯속으로 팔려나간다. 

버릴 데가 하나도 없는 메밀이지만 메밀꽃의 부가가치는 열매 그 이상이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봉평에서 나고 자란 이효석(1907~1942) 선생은 봉평 메밀꽃밭을 일컬어, 흐붓한 달빛에 소금을 뿌린 듯 숨이 막히는 광경이라고 표현했다. 

화려한 꽃도 아니고, 수수하기 그지없는 메밀꽃밭에 수수하기 짝이 없는 달빛이 비쳐들었을 뿐인데 선생은 숨이 막힌다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는 뜻이리라.

봉평전통시장 진입로. 허생원 일행은 봉평장터를 떠나 대화장터로 향했다.
봉평전통시장 진입로. 허생원 일행은 봉평장터를 떠나 대화장터로 향했다.
소설 속 봉평장터를 재현한 미니어처. ‘이효석문학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소설 속 봉평장터를 재현한 미니어처. ‘이효석문학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허생원을 따라가는 여행이니만큼 봉평전통시장을 출발지점으로 잡아보자. 봉평장터에서 출발해 인근 가산공원, 이효석문학관, 물레방앗간을 도보로 둘러본 후 대화장터로 이동하면 한나절 여행코스로 딱이다. 

다만 한날에 봉평장터, 대화장터 두 곳을 둘러보는 일은 불가능한데 봉평장터는 2일과 7일에, 대화장터는 4일과 9일에 시차를 두고 열리는 오일장이기 때문이다. 두 장터 중 한 곳을 가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대화장을 둘러보는 게 좋다.

가산공원에는 이효석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흔적이 보전되어 있다.
가산공원에는 이효석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흔적이 보전되어 있다.

봉평장터의 경우 지척에 ‘이효석가산공원’이 자리 잡고 있어 장을 보지 않더라도 봉평 여행의 필수코스로 꼽힌다. 가산공원에는 이효석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흔적이 보전되어 있고, 다리를 쉬어갈 만한 그늘도 많다. 

드넓은 잔디밭에 한쪽에는 그 시절 봉평장터의 핫스팟 ‘충주집’이 자리하고 있다. 먼길을 떠나온 나그네들이 술추렴도 하고 요기도 하던 곳이다. “이리오너라” 부르면 고운 얼굴의 충주집이 낡은 창호문을 밀치고 고개를 쏙 내밀 것 같다. 

소설 속 충주집. 봉평장터를 찾은 사람들이 술추렴도 하고 요기도 하던 곳이다.
소설 속 충주집. 봉평장터를 찾은 사람들이 술추렴도 하고 요기도 하던 곳이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얽음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 말미에서 허생원과 동이는 부자지간으로 암시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연적 관계에 놓인 것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하며 동이를 탓하던 허생원이지만, 동이가 뺨을 얻어맞고도 대거리를 하지 않자 도리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어 허생원의 당나귀에게 일이 생기자 헐레벌떡 부르러 오는 것을 보고 오히려 정겨운 마음이 든다. 

‘효석문화마을’에 위치한 메밀꽃밭. 봉평여행의 백미라 할 만하다. ⓒ평창군
‘효석문화마을’에 위치한 메밀꽃밭. 봉평여행의 백미라 할 만하다. ⓒ평창군
물레방앗간은 허생원이, 단 한 번의 인연이었던 성서방네 처녀와 운우지정을 나눈 곳이다.
물레방앗간은 허생원이, 단 한 번의 인연이었던 성서방네 처녀와 운우지정을 나눈 곳이다.

마을 어귀 물레방앗간은 단 한 번의 인연이었던 성서방네 처녀와 허생원이 운우지정을 나눈 곳이다. 슬픔이 찰랑찰랑 넘칠 듯 차오른 날 밤, 마을 최고의 일색이었던 성 서방네 처녀는 우연히 마주친 허생원에게 운명인 듯 자기 위로인 듯 허물어지고, 두 사람은 소식조차 알지 못한 채 반평생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허생원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이와 밤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길모퉁이 빈터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물레방앗간 내부에는 디딜방아와 포토존이 자리 잡고 있다. 외부에는 커다란 물레방아가, 비류직하 물줄기를 꼬박꼬박 앞으로 받아넘기며 기운차게 돌아간다.

‘이효석문학관’ 가는 길. 산책하기 좋은 데크길이다.
‘이효석문학관’ 가는 길. 산책하기 좋은 데크길이다.
가산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총망라한 ‘이효석문학관’.
가산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총망라한 ‘이효석문학관’.
‘이효석문학관’에 전시된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의 미니어처
‘이효석문학관’에 전시된 허생원과 조선달, 동이의 미니어처

 물레방앗간 뒷산 중턱에 ‘이효석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2002년 문을 연 이곳에는 미국에 거주하는 장남 이우현 씨가 기증한 선생의 육필원고와 훈장이 전시되어 있다.

그밖에 가산 이효석의 생애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메밀꽃 필 무렵>과 관련하여 선생의 문학세계를 염탐할 수 있다. 특히 옛 봉평장터를 재현한 미니어처와 허생원 일행이 나귀를 앞세워 메밀밭을 지나는 조형물은 드팀전(온갖 천을 팔던 가게)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 시절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대화전통시장'
그 시절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대화전통시장'

소설 속에 등장하는 대화장은 봉평장 다음날 열리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지금은 매월 끝자리 4, 9일에 개장한다. 현 봉평장과는 이틀 간격으로 열리는 셈이다. 대화장터는 조선시대에 “서울 동대문 밖 대화장”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대형 장터였지만, 영동고속도로 개통의 영향으로 오히려 소박한 시골장으로 변모했다.

비록 그 시절의 영화는 사라지고 없지만 생선가게, 과일가게, 꽃가게, 모종가게, 옷가게, 신발가게 등 ‘있을 것은 다 있는’ 평창 대표 전통시장으로 손꼽힌다. 장날이면 시장을 보러 나온 현지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대화전통시장의 명물 ‘올챙이국수’. 옥수수로 만든다.
대화전통시장의 명물 ‘올챙이국수’. 옥수수로 만든다.

대화시장은 상품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특색 있는 먹거리 장터로도 이름 높다. 순대, 메밀전, 메밀전병, 도토리묵, 녹두전 등 숱한 먹거리가 있지만 대화장을 찾았다면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국수’만큼은 놓치지 말자. 

지금은 기계로 뽑아 국수가닥이 끊김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으로 밀어서 만든 탓에 면발이 울퉁불퉁했다. 그 모양이 올챙이가 뽀글뽀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올챙이국수는 따뜻할 때 간장을 뿌려 후루룩 마시듯 먹는 게 제맛이다.

쌉쌀하면서 텁텁한 메밀의 맛과 아삭한 무김치가 극강의 조화를 이루는 순메밀국수.
쌉쌀하면서 텁텁한 메밀의 맛과 아삭한 무김치가 극강의 조화를 이루는 순메밀국수.

올챙이국수로 부족하다면 봉평이 자랑하는 메밀국수 맛을 제대로 볼 일이다. 봉평전통시장 입구에 자리 잡은 ‘초가집 옛골‘은 1977년 ‘대성식당’으로 개업하여 2000년 현 상호로 개칭했다. 40년 이상 영업을 이어온 만큼 대를 이은 단골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식당이다.

‘초가집 옛골’의 주메뉴는 100% 국내산 메밀로 만든 순메밀국수(물: 9,000원, 비빔:10.000원). 쌉쌀하면서 텁텁한 메밀의 맛과 아삭한 무김치가 극강의 조화를 이룬다. 국수도 국수지만 식탁마다 설탕 대신 꿀을 비치하는 등 손님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씀씀이가 돋보이는 집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 메밀음식점이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운영하는 2020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사람 대신 AI로봇이 홀써빙을 뛰는 것이 눈에 띤다. 

이 일대에는 ‘모밀국수’라고 쓰인 간판이 여러 곳 보이는데 모밀은 메밀의 방언이다. 이효석 선생의 소설 제목도 원래는 ‘모밀꽃 필 무렵’인 것을 맞춤법에 맞추느라 ‘메밀꽃 필 무렵’이 되었다.

◆봉평전통시장 
영동고속도로 - 장평IC – 31번 국도로 좌회전 – 가산문학공원

◆대화전통시장
영동고속도로 – 장평IC - 31번 국도로 우회전 - KT평창지점 

◆이효석문학관 
◇ 관람시간: 5~9월: 9:00~18:30, 10~4월: 9:00~17:30
◇ 관람료: 성인 기준 2,000원
◇ 매주 월요일 휴관(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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