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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왜구의 부석사 불상 약탈은 사실이었다

고려말 왜구의 부석사 불상 약탈은 사실이었다

  • 기자명 박두웅 기자
  • 입력 2022.10.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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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 공주대 교수 “부석사 불상 약탈은 1378년 9월에 일어난 일”

5일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대표의원 박범계, 윤영석)이 주최한 ‘고려말 왜구의 침탈과 서산 부석사 불상과의 상관성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 제공)
5일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대표의원 박범계, 윤영석)이 주최한 ‘고려말 왜구의 침탈과 서산 부석사 불상과의 상관성 세미나’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 제공)

[뉴스더원=박두웅 기자] 충남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된 시기가 1378년 9월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윤용혁 공주대 역사학과 교수는 5일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대표의원 박범계, 윤영석)이 주최한 ‘고려말 왜구의 침탈과 서산 부석사 불상과의 상관성 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세미나는 이영 방송대 일본학과 교수, 윤용혁 교수, 김문길 부산외대 일본어과 명예교수의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국회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윤 교수는 기록에 따르면 고려 말 충남 서산지역의 왜구 침입과 관련해 우왕 원년(1375년) 9월 영주(천안), 목천, 서주(서산), 결성 침입에 이어 우왕 3년(1377년) 여미현(서산 해미), 우왕 4년(1378년) 2월 태안, 9월 다시 서주(서산), 우왕 5년(1379년) 8월 여미현(서산 해미)을 침입했고 우왕 7년(1381년) 9월 영주(천안), 서주(서산)를 침입하는 등 빈번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와 같은 왜구 침입 기록에 근거할 때 1375년, 1378년, 1379년, 1381년이 서산지역에 왜구가 침입했던 시기로 이 중 여미현(해미)은 부석사와 방향이 같지 않으므로 1377년과 1379년을 일단 범위에서 제외하면 1375년 9월, 1378년 9월, 1381년 9월 침입으로 3건 모두 추수 중이거나 막 추수가 끝날 무렵의 시점으로 이 가운데 부석사 침입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1378년 9월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137년과 1381년의 경우 왜구가 천안 방면까지 가려면 서산읍치에서 바로 동쪽으로 가야 하므로 부석사로의 접근성에 애로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영 방송대 일본학과 교수의 발표 모습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 제공)
이영 방송대 일본학과 교수의 발표 모습 (국회문화유산회복포럼 제공)

이영 교수는 ‘고려 말 왜구의 침탈 현황과 피해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왜구의 침입이 심해 당시 태안은 고려 말 공민왕 22년(1373년)에 폐군이 되기도 했다”고 말하고 “당시 태안군수는 2, 3명의 관리만 데리고 관청을 서산군으로 옮겼고, 10년 뒤 다시 예산군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왜구의 고려 침탈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보다도 물자의 약탈이었다. 해안가 농경지에서 정착 생활을 하던 농민들은 왜구로 인해 농사를 포기하고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녀야 했다”며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이에 따라 국가 재정이 고갈되고 민심은 극도로 비탄에 젖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 6월 15일 16번째 변론기일에 처음으로 참석한 일본 대마도 다나카 세쓰료 관음사 주지가 “관음사 설립자인 ‘종관’이 1526년쯤 조선에서 불상을 적법하게 취득해 일본으로 받아왔다”는 주장과 관련해서 김문길 부산외대 일본어과 명예교수는 간슈이찌(關周一)의 ‘대마도와 왜구’의 저서를 인용, “당시 약탈된 불상들은 대부분 화상을 입고 손상된 것이 많았다. 이들은 도읍지로 가지 않고 대마도 중심으로 처분됐다”고 설명했다.

또 김 교수는 사이토 히로유끼가 ‘고려사 일본전3’에서 발표한 1375년 9월 왜구들의 서산 침입 고지도(2013년 ‘대마도의 자연과 문화 39호 61P-이즈하라 발간)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를 지켜본 참석자들은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왜구의 부석사 불상 약탈에 대한 역사적 근거들이 제시됐다”며 “일본 측의 적법한 취득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역사적 근거들인 만큼 재판부의 공정하고 신속한 판결을 기대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범계 공동대표는 “부석사 불상 재판에서 일본 측은 조선시대에 정당하게 선물을 받은 것이라며 시효취득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고려말 왜구의 침탈이 극에 달했고 당시 서산은 왜구에 의해 모든 지역이 약탈당한 곳이다”며 “문화유산은 미래로 전달되는 것이니 만큼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부석사 불상의 합법적 소유권이 명확히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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