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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환택의 頂門一針]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뗏목을 버려라

[황환택의 頂門一針]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뗏목을 버려라

  • 기자명 황환택
  • 입력 2022.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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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환택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황환택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뉴스더원] 그해 봄은 비가 많이 내렸다. 강이 범람하여 마을을 위협했다. 마을 사람들은 급히 중요한 것만 가지고 강 건너편으로 대피해야 했다. 강을 건널 뗏목이 있었기에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달했다. 

그러나 도착한 그곳도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비가 내리면 이곳도 안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고지대이니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때 누군가 ‘이 뗏목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 이 뗏목도 가지고 저 언덕으로 갑시다’고 말한다. 

생명을 구해준 구명선 같은 뗏목,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동의하고 그 뗏목을 메고 언덕을 오른다. 그러나 강물에 젖은 뗏목은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다시 폭우가 쏟아진다. 절명(絶命)의 순간이다. 누군가 말했다.

“이제 그 뗏목을 버려야 언덕을 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두가 삽니다.” 

그렇다. 사벌등안(捨筏登岸), 언덕에 오르면 뗏목을 던져 버려야 한다. 그래야 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폭우가 쏟아지는 참으로 위기의 마을이었다. 험한 파도가 몰아치던 선거의 강과 국민의 강을 무사히 건넜다. 그리고 이제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이제는 버려야 한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의 뗏목을 버리고 새로운 언덕에 올라 마을을 먹여 살릴 진용을 갖추고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 

물에 젖은 뗏목을 지고 언덕을 오르려다 다시 뗏목과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 뗏목이 강을 건널 때 비록 고마운 존재였는지 모르나 언덕을 올라야 하는 지금은 단지 ‘젖은 나무’이고 ‘무거운 짐’이다. 

장자가 말한다. 득어망전(得魚忘筌), 고기를 얻었거든 통발은 잊어라. 뗏목이 없으면 강을 못 건너고 통발을 써야만 고기를 잡는다. 그러나 언덕에 오른 뒤에 뗏목을 끌고 다닐 수는 없고 고기를 잡은 후에 통발을 잊어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조약돌로 때려 넘겼다고 조약돌을 비단에 싸서 제단에 둘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 위대한가. 아니면 조약돌이 위대한가. 이 물음은 초등학생도 아는 대답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뗏목들과 통발들과 조약돌들이 모두 자기가 잘났다고 자랑질하며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 그러니 마을 주민들은 화가 난다.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이 넘었다. 폭우로 범람했던 강을 건너 언덕에 올랐으나 마을 사람들의 지지가 말이 아니다.

우선 먹고살기가 너무 어렵다. 물가는 폭등하고 각종 경제지표는 연일 심각한 위기를 알리고 있다. 새로운 태풍과 폭우가 쏟아질 예고가 날마다 마을에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마을 백성들의 굶어야 하는 배고픔과 거처도 없이 추위에 떠는 것을 뗏목과 통발과 조약돌이 아는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강을 건넌 일 자랑하며 ‘윤핵관’을 넘어 ‘찐윤핵관’만 찾고 있는가. 백성들은 배고픔과 추위로 떨고 있는데 2인자 운운하며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폭우의 강을 건넜다. 그러나 다시 절명(絶命)의 순간이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날에 목놓아 울며 외친다. 

“뗏목을 버려라. 통발을 잊어라. 다윗의 조약돌은 그냥 들판에 던져라. 뗏목과 통발과 조약돌은 스스로 자중하고 떠나라.” 

그리고 오직 마을 사람만 생각하라. 

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나는 이날에 목놓아 크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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