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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흐름을 거스르는 자들

[장원섭의 맛있는 역사] 흐름을 거스르는 자들

  • 기자명 장원섭
  • 입력 2022.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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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국제교류원장
장원섭 본지 논설위원, 장안대학교 국제교류원장

[뉴스더원]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은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늘 꿈꾸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사냥을 위해 수레를 타고 거리로 나섰다. 길을 지나던 모든 백성이 길가로 물러서서 머리를 조아리며 왕의 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길 한가운데에서 수레가 멈추어 섰다. 수레 안에 있던 장공이 장막을 걷어 젖히고 그 연유를 물었다. 마부는 대답 대신 수레바퀴 쪽을 가리켰다.

장공이 자세히 내려다보니 수레바퀴 앞에서 이상하게 생긴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쳐들고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며 덤벼들 듯이 자신의 행차를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어허, 맹랑한 놈이로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마부가 대답했다.

“사마귀(螳螂)라는 벌레입니다. 저놈은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도대체 물러설 줄을 모르는 놈입니다. 게다가 제힘은 생각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습니다.” 장공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허허. 만약 저 벌레가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천하무적의 용사(勇士)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微物)이지만 그 용기가 참으로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 가도록 하라.”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이 고사는 제 분수를 모르고 강한 적과 맞서 겨루는 무모한 행동을 비유하고 있다.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역량을 가늠하여 잘 살펴보고 적절하게 처신하라는 가르침이다. 오늘날에는 ‘당랑지부(螳螂之斧)’,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등의 고사성어로 사람들에게 회자하고 있다.

『장자(莊子)』 「인간세편(人間世)」 편에도 “그대, 저 사마귀를 아는가. 그가 팔뚝을 치켜세우고 수레를 막아선다. 제힘으로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고 하는 짓이다. 이런 짓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다. 경계하고 삼가라. 이를 어기면 위태로운 것이다”라고 했다.

독재 권력은 다수의 힘으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 그들은 입으로는 언제나 국민을 위한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온갖 감언이설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노력할 뿐, 실상은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만을 위해 편 가르기에만 열중한다.

어느 시대 어떤 독재자도 자기 권력을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에 대한 평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우리 속담에 어림도 없는 짓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늘을 보고 주먹질한다.”라고 조롱하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감히 하늘을 보고 주먹질해대는 것은 당치도 않은 어림없는 짓이라는 뜻이다.

권력에 집착하던 세력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권좌에서 밀려나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이미 권력의 단맛에 잔뜩 취해 있어서 옳고 그름에 관한 판단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저항은 가끔 마약에 중독된 자들처럼 광적이며 패륜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예로부터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라 했다. 저마다 인간답게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바로 하늘의 목소리다.

민심을 거스르는 그 어떤 권력도 결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다. 민심의 흐름은 항상 그 시대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서거나 거스르려는 이들의 몸부림은 당랑거철이라는 고사에 나오는 교만한 사마귀와 다를 게 없다.

수레를 막아서서 도끼 발을 치켜들고 호기를 부리던 사마귀는 결국 바퀴에 깔려 죽었다. 자기를 가상하게 여겨 그를 피해 가려던 수레까지 막아서려던 무모함이 빚어낸 대가였다. 사마귀가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어찌 민심이 이끌어가는 수레바퀴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온갖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이고 시대의 흐름을 막아서려던 자들의 ‘아무 말 대잔치’도 끝났다. 국민을 상대로 약속한 말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저들이 내뱉은 그 ‘아무 말’이, 결코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다.

아무 말이나 쏟아대던 확성기 소음이 들리지 않는 주말 오후다.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여름이 성큼 몰려온다. 하늘을 보고 심호흡하며 간지럽던 귓속을 후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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